영화, 드라마, 문학······, 수많은 <좀비 작품>을, 저마다의 테마에 걸맞는 저자에게 엄선을 부탁했다. 영화는 이토 요시카즈 씨, 해외문학은 카자마 켄지 씨, 일본문학은 사세가와 요시하루 씨, 라이트노벨은 이다 이츠시 씨에 의한 추천. 만화와 게임에 관해서는 논고 안에서 소개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 많은 탓에, 여기서는 다루지 않는다. 개개의 논고와 비교하면서 읽어준다면 고맙겠다.


영화


세계 최초의 좀비 영화 <화이트 좀비>로부터 약 80년. 아이티 전승을 베이스로 해서 탄생한 좀비 영화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거쳐 카니발리즘을 가미한 스플래터로 탈바꿈 하여, 이제는 폭넓은 층에 지지 받는 호러 엔터테인먼트가 되었다. 이러한 변천의 전거가 되는 작품 중에서, 동시에 팬들 사이에서 평가 높은 스무편을 골랐습니다.


<화이트 좀비> 빅터 핼퍼린 1932년


미군이 군정을 펼친 아이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유니버설의 몬스터 영화가 인기를 얻는 가운데 탄생한 세계최초의 장편 좀비 영화. 주인공인 미국인 커플은,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아이티 관광을 가나, 신부를 흠모한 주술사에 의해 신부가 좀비가 되고 만다. 본작에 등장하는 좀비는 주술사의 명령에 충실한 노예로, 평소에는 공장에서 노동을 하고 있다.


그들이 자주적으로 인간을 습격하는 일은 없고, 인육을 먹지도 않는다. 이 영화에 그려져 있는 것은 좀비의 무서움보다 오히려 주술사에 의해 좀비가 되고 만다는 공포인 것이다. 


독립 계열 프로덕션이 제작한 본작은, 불과 11일 동안 촬영한 저예산 영화인데, 거대 유니버설의 세트장을 빌렸기 때문에 싸구려란 느낌은 나지 않는다. 이미 <드라큐라>로 명성을 얻은 벨라 루고시의 당당한 악역 연기도 한 몫하여, 개봉 당시에는 인디 영화로는 이례적인 빅히트를 기록했다.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자크 투르뇌 1943년


서인도 제도의 홀랜드 저택에 간호사로 부임한 베시는, 살아있는 시체가 된 부인을 보살피게 된다. 간호를 계속하는 가운데 홀랜드의 인품에 반한 그녀는 어떻게든 부인을 치료하고자  지방의 부두교 의식을 의뢰하는데······. RKO의 호러 영화를 수차례 제작한 발 류튼 제작. 동명 소설 <제인 에어>를 원작으로 커트 시오드맥이 각본을 쓰고 <캣 피플>의 자크 투르뇌가 감독을 맡았다.


눈알이 튀어나온 흑인 좀비나, 수상쩍은 부두 의식이 나오기는 하지만, 좀비 영화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비극적 러브 로맨스다. 히로인이 몽유병 환자 같은 부인의 손을 잡고, 밤이 이슥한 사탕수수 밭을 지나가는 씬을 비롯해 음영의 깊이가 있는 시적인 영상미가 아름답다.


2001년에 리메이크작 <리투얼>이 제작되었지만, 오리지널에는 아득히 미치지 못한다.


<좀비의 역병> 존 길링 1966년


콘월의 한적한 광산 마을에 의문의 역병이 창궐한다. 조사를 하러 온 포브스 경은 희생자의 묘를 다시 파내어 보는데, 원래라면 거기에 있어야할 시체가 사라져 있었다······.


5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두에 걸쳐 빼어난 호러 영화를 무수히 배출한 영국의 해머 필름 제작. 타이틀에 "흡혈"이 있긴 하지만 (원제는 THE PLAGUE OF THE ZOMBIES, 일역은 흡혈좀비) 본작의 좀비는 피를 빨지 않고, 인육을 탐내지도 않는다. 의례적으로 그들은 주술사의 뜻대로 행동하는 충실한 노예로 등장한다. 무대는 아이티에서 영국의 시골마을로 옮겨져 있지만, 본작은 <화이트 좀비>와 달라진 게 없는 클래식한 부두 좀비 영화인 것이다.


해머 영화다운 고식 무드도 농후한데, 컬러로 그려진 살아있는 시체의 비주얼은, 80년대에 양산되는 그로테스크한 좀비 영화의 양식이기도 하다. 여자 좀비의 목을 삽으로 절단하는 시퀀스는 <이블 데드>에 영향을 주었다고도 일컬어진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조지 로메로 1968년


"좀비 영화의 대부" 조지 로메로의 데뷔작이자 원조 모던 좀비 영화. 인육을 먹고, 감염되고, 뇌를 파괴당하기 직전까지 활동을 하는 좀비가 본작에서 처음 등장하여, 이후 부두 좀비를 대신하는 새로운 스탠다드가 됐다. 촬영 당시, 로메로는 스스로 설립한 제작회사에서 CM을 제작한 경험 밖에 없었고, 그 외의 스탭, 출연자에 관해서는 초보자나 마찬가지. 덤으로 제작비 11만 달러의 흑백 저예산 영화이면서, 무대를 한 채의 농가로 한정시켜, 되살아난 사자가 인간을 습격한다는 이상 사태에 직면한 인간들의 드라마를 냉철하게 담아냈다.


로메로나 각본가 존 루소에 의하면 "티켓 가격에 걸맞는 무서운 호러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 말고 다른 속뜻은 없었고,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흑인 주인공도 오디션 결과에 불과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본작은 왕왕 베트남 전쟁이나 공민권 운동 같은 이 시대의 사회정세와 함께 논해진다.


<렛 슬리핑 콥시즈 라이> 호르헤 그라우 1974년


런던에서 골동품점을 경영하는 조지는 주말을 이용해 오토바이를 타고 상품 배달을 나섰다가 상대방 과실 사고를 당한다. 그는 차의 소유자 에드너와 함께 그녀의 언니를 방문하는데, 이상한 살인사건에 휘말려 들어······.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비공식 컬러판을 지향해 제작된 스페인=이탈리아 합작. 루치오 풀치 작품에서 솜씨를 뽐내는 지아네토 드 로지가 특수 분장을 담당하였고, 당시로서는 지나치게 과격할만치 과격한 잔혹묘사와 리얼한 좀비 분장을 실현했다.


노골적인 카니발 씬을 포함해, 본작의 좀비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참고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 모습이 필름에 비추지 않다거나, 자신의 피를 매개로 삼아 동료를 늘리는 등, 뱀파이어를 연상케 하는 특징을 겸하고 있다.


좀비 발생의 원인은 신형 해충구제장치의 영향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로메로와 같은 즉물적, 유물론적인 톤은 느껴지지 않고 초자연적인 몬스터 영화의 맛이 있다.


<시체들의 새벽> 조지 로메로 1978년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속편이자 좀비영화는 물론이고 호러 영화를 대표하는 걸작이기도 하다. 발표한지 30년 이상이 흘렀는데 지금도 여전히 빛바래지 않고 영화, 게임, 소설, 만화 등 갖가지 서브 컬쳐에 영향을 주고 있다. 


전작에서는 작은 마을을 습격한 좀비 팬더믹은 미국 전토로 확대되어 (혹은 세계 규모?), 무대는 한 채의 집에서 거대한 쇼핑몰로. 방송국 직원과 SWAT 대원으로 구성된 주인공 그룹은 혈육에 굶주린 좀비만이 아니라, 침략자로 돌변한 다른 생존자와도 싸워야만 한다.


전작이 비평가에게 호러 영화의 형식을 빌린 사회풍자극으로 받아들여진 일로 인해, 로메로는 그러한 수법이 가능하단 것을 깨닫고, 여기서 처음으로 사회 상황을 의도적으로 반영했다고 한다. 쇼핑몰은 소비사회의 상징이며, 생전의 습관에 의해 그곳에 모이는 좀비는 당시의 평균적인 미국인의 모습인 것이다. 


<좀비 2> 루치오 풀치 1979년


뉴욕만을 표류하는 크루저에 올라선 경찰관이 전신이 썩어 문드러진 괴물 같은 사내에게 물려 죽는다. 사건을 추적하는 신문기자 피터와 크루저의 소유자인 아가씨 앤은 행방불명 된 그녀의 부친을 찾아 카리브 해의 무투 섬을 향하는데······.


마카로니 웨스턴이나 지알로(GIALLO)를 만들어온 장인 감독 루치오 폴치가 로메로의 <시체들의 새벽>에 편승해 발표한 이탈리아 좀비물. 타란티노가 '오페라적인 순간'이라 평한 안구 관통씬을 필두로 피와 내장으로 얼룩진 바이올런스 묘사가 빈번하게 나온다.


하지만 스토리 그 자체는, 40~50년대의 고도를 무대로 한 부두 좀비영화와 비슷하여, 추억의 <괴기영화>를 80년대풍 스플래터로 꾸며 완성한 것이나 다름없다. <비욘드> <지옥의 문>의 지아네토 드 로지가 담당한 썩은 좀비 메이크도 훌륭해서, 그로테스크함에 있어서는 본가 <시체들의 새벽>을 능가하고 있다.


<비욘드> 루치오 풀치 1981년


폐업한 호텔을 상속받은 라이자는 영업재개를 위해 개수공사를 시작하지만, 작업원이 추락사고를 일으키고, 지하실에서 썩은 사체가 발견되는 등의 괴사건을 맞게 된다. 심지어 호텔을 뜨라 경고하는 맹목의 여성이 나타나고······.


루치오 풀치가 <좀비 2>, <지옥의 문>에 이어 발표한 좀비 스플래터다. 좀비의 출연은 그리 많지 않지만, 산으로 얼굴을 눅신눅신 용해하고, 타란튤라 무리가 안구를 먹는 등 잔혹 묘사가 압권. 스플래터에 정평난 폴치 감독작 중에서도 그 과격함은 제일을 자랑한다.


그 반면 <지옥의 문>의 결괴를 테마로 한 오컬트 터치의 스토리는 의미불명인 점이 많아, 영화에 논리적인 전개를 바라는 사람 입맛에는 전혀 맞지 않을 것이다. 주연인 카트리나 맥콜은 일본에서는 영화판 <베르사유의 장미>의 오스칼 역으로 유명한데, 풀치 좀비영화 <지옥의 문> <세미트리>에도 출연했다.


<죽음과 매장> 게리 쉐먼 1981년


작은 항구 마을 보터스 블러프에서 살인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다. 조사에 나선 보안관 댄은 수상한 사람을 차로 치게되고, 프론트 부분에 남은 피부조직을 조사하지만, 그것은 삼개월 전에 죽은 인간의 것이었다······.


<에이리언>의 콤비 댄 오배논과 로널드 슈셋이 각본을 담당. 아류의 또 아류와 같은 방화 제목이 붙어 있지만, 로메로 작품의 싸구려 에피고넨이 아니라, 비트는 맛이 있는 미스테리 터치의 부두 좀비 영화이다. 물론 카니발 묘사는 없다. 


게리 쉐먼의 연출은 절제되어 있어, 수상한 무드의 조성을 우선하면서 나직하게 이야기를 진행해 간다. 그렇다곤 해도, 거드름 피울 뿐인 따분한 작품이 아니라, 절정부에 삽입된 바이올런스 씬이 잠기운을 날려준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스탠 윈스톤이 특수 분장을 담당했고, 인간 바베큐나 산에 의한 얼굴 용해는 이탈리아 좀비영화에 필적하는 꺼름칙함.


<이블 데드> 샘 레이미 1981년


샘 레이미 감독 데뷔작은 80년대 스플래터 붐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제작비는 삼천 칠백만 달러. 불과 스물 한살의 레이미가 친구들을 모아 촬영한 인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텐션과 속도감으로 스크린에 피를 흩뿌린다.


그야말로 스티븐 킹이 '이제껏 없었던 가장 잔인한 호러 영화'라 평한 대로인데, 숲에 숨어 달리는 셰이키 캠 영상, 슬랩스틱한 인체 파괴 묘사는 그로테스크를 초월해 상쾌함조차 있다. 무언가와 비교되는 일이 많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작품에 당시 사회정세가 겹쳐 보인 것과 반대로, 이쪽은 속도 겉도 없는 피투성이 엔터테인먼트다. 


산장에서 주말을 보내던 학생 그룹이 악령의 습격을 받는다는, 극히 심플한 이야기로 보는 사람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는 게 대단하다. 지금까지 두편의 속편이 제작되었고, 페데 알바레즈 감독의 의한 리메이크가 머지않아 완성된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3 - 시체들의 날> 조지 로메로 1985년  


로메로의 '리빙데드 사가' 제 3탄. 구체적으로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전작 <시체들의 새벽>에서 몇 주후, 혹은 몇 달 후의 설정일 것이다. 이미 지상에는 살아있는 시체들로 뒤덮혀, 한줌의 생존한 과학자와 병사 그룹이 거대한 지하창고에서 살고있다. 


세계규모의 대재해를 상대로 그들은 대립하여, 서로의 입장을 위태롭게 만든다. 초고 단계에서는 훗날의 <랜드 오브 데드>를 방불케 하는 스케일 클 이야기가 될 예정이었지만, 예산 문제로 대폭 축소. 살풍경한 지하창고에서 생존자간이 불신 가득한 다툼을 벌인 끝에, 아비규환의 클라이맥스가 찾아온다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전개다.


거기에 악센트를 가미한 것이, '법'이라 이름 붙은 지능이 있는 좀비의 존재다. 과학자들에 의해 길들어진 그는, 괴물과 다름없는 외관과는 정반대로 유머러스한 동작과 주인을 향한 "충성심"으로 인해서 좀비 영화 굴지의 인기 캐릭터가 되었다.


<바탈리언> 댄 오바논 1985년


의료창고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프레디는, 선배로부터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말을 듣는다. 그 증거로 보여준 미라가 들어있는 밀봉 탱크에서 느닷없이 가스가 새어 나오고······. <죽음과 매장>의 각본가 댄 오바논이 직접 감독을 맡은 코미디 요소 강한 좀비 영화.


존 루소가 쓴 동명 소설의 영화화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배논의 재창작으로 다른 작품이 되었다. 극중,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실제로 나오는 좀비는 뇌를 파괴당해도 죽지 않고, 태워 죽이면 기화한 가스로 인해 더 많은 동료를 늘려간다. 덤으로 제대로 지능도 있어서, 경찰 무선으로 지원을 요청해서 출동한 경찰관을 습격해버린다.


'타르맨'과 '1/2 Woman Corpse'와 같은 개성적인 좀비 디자인은 <판의 미로> <미스트>의 컨셉 아트를 담당한 윌리엄 스토트의 작품.


<좀비오> 스튜어트 고든 1985년


천재적인 의대생 허버트 웨스트는 사체를 되살리는 것이 가능한 신약을 독자적으로 개발한다. 그는 연구성과를 가로채려 든 힐 교수를 살해하고, 유체에 소생약을 투약하게 되는데······. 80년대에 B급 호러 영화를 연달아 제작한 엠파이어 픽쳐스의 초기에 개봉되어, 동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결정지은 에로, 그로테스크, 넌센스한 걸작이다.


일단은 러브크래프트의 단편을 원작으로 삼았지만, 설정이나 캐릭터를 빌려온 정도로 나머지는 대담한 어레인지. 자기 생목을 부여안은 좀비 교수가 전라여성을 혀로 핥고, 튀어나온 내장이 촉수처럼 습격해 오는 등, 께름칙한 하이텐션의 스플래터 희극을 펼친다. 의대생 웨스트를 연기한 제프리 콥스는 이 한편으로 호러 영화 팬들에게 얼굴이 알려져,두편의 속편에도 같은 배역을 연기했다. 고든 감독작 중에는 <지옥 인간> <펜드럼> 등의 작품에도 출연했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톰 사비니 1990년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퍼블릭 도메인화 되어있는 까닭에 이제까지 여려편의 리메이크가 제작되었는데, 오리지널 판의 감독인 로메로가 제작에 참여한 것은 본작 뿐. 로메로 스스로 각본을 쓰고 <좀비>의 특수 분장을 담당했던 톰 사비니가 감독을 맡았다.


사바니는 TV시리즈 <어둠속의 외침>으로 감독 경험이 있고, 그 연출은 다소 정석에서 벗어나 있지만 견실하다. 한편, 로메로의 각본은 구작의 스토리를 따르면서도 시대성을 반영하여, 60년도 판을 모르는 계층한테도 어필할 수 있게 변경되었다. 오리지널 판의 히로인은 오빠의 죽음을 눈앞에서 본 탓에 망연자실해서, 다른 생존자에게 있어서는 짐덩이에 지나지 않았지만, 본작의 히로인은 스스로 총을 쥐고 좀비와 대결을 벌인다.


그녀가 스커트를 벗어던지고 청바지로 갈아입는 장면은, 60년대 히로인이 90년대적인 듬직한 히로인으로 성장하는 순간이다.






AND




승전


당신이 좋아요.

그런 말을 하면 당신은 당혹스러워 할까?

당혹스럽지는 않을거라 생각한다.

만난 적도 없는, 당신을 어째서 내가 좋아할 수 있는지 미심쩍어할 거다.

지당한 일이다.


이걸 읽고있는 당신과 나는 만난 적도 없고, 어쩌면, 평생 만날 일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것은 짝사랑이나 다름없다.


이 수기를 쓰고있는 동안 나는 이걸 손에 쥐고 읽어줄 당신에 대해서 줄곧 상상해왔다.


당신은, 어떤 사람일까? 남성일까 여성일까, 연상일까 연하일까. 

어떤 경위로 이 수기를 손에 넣은걸까.


이 수기를 손에 넣는데는 상당한 고초가 있었을 거다. 

정보적, 물리적인 프로텍트를 몇겹이나 쌓았다.


경고문도 읽었으리라 생각한다. 

이 수기를 손에 넣는 것 만으로, 당신이나, 당신의 가족한테 심각한 위기가 닥칠 가능성이 있다고.


딱히 협박하려는 것도 아니다. 단순한 사실이다.


경고와 프로텍트를 돌파해서, 당신은, 지금, 이렇게, 이 수기를 읽고있다.


당신은, 어떤 심정으로, 그 고생을 한 걸까. 흥미가 동했던 걸까, 한가해서 그랬던 걸까, 혹은 그들─300인 위원회라 불리우는 존재와 싸울 단서를 손에 넣기 위해서일까. (※1)


이런 식으로, 당신을 생각하면서, 이 수기를 쓰는 건, 무척 즐겁고, 귀중한 체험이었다.


여기에 쓰인 내용은 어느 여성의 기록이다.


자기중심에 제멋대로고, 주위 사람에 민폐를 끼치는 여자이지만, 좋은 점도 있다. 

적어도 심심하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그녀에게 관심을 가져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1) 마지막 목적이었다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이 수기에는 그들과 싸울 단서는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에 대해서는 첨부 파일을 참조해주길 바란다. 다만 안전성은 보증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수기를 읽으면 알게 되리라.


제 1장


-1-


이 무렵,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여동생 아키호와 놀던 시절의 기억이다.

아키호가 아직 어린 무렵에 했던, 건프라 놀이.

나는 하얀 건밤을 쥐고, 아키는 빨간 작크를 꼭 쥐었다.


"부웅, 뿅뿅, 콰광!"

"부웅! 빠앙!"


두개의 기체는 백색과 적색 빛이 되어 사상의 우주를 날아오른다.

진공에 번뜩이는 빔광선. 그 사이를 수놓는 슬라스터의 분사염이 그리는 곡선.

두기는 떨어졌다, 접근했다, 다시 떨어지며, 숙적처럼 연인처럼 대치한다.


"동강! 댕강! 퍼퍼펑!"


마침내 건밤의 샤벨이 작크의 토마호크를 양단내고, 재차 한칼에 제네레이터를 꿰뚫었다.


유폭. 폭발. 설령 헬멧을 쓰고 있더라도 즉사를 면치 못할 일격.


"이제 끝, 건밤의 승리!"

"이긴 거 아냐 토마호크로 피했는 걸"

"땡! 토마호크로 샤벨은 못 막아요~ 샤벨은 빔이라서 토마호크를 베어낸답니다~"

"토마호크도 빔이거든"

"그건 빔이 아니랍니다."


룰이 없는 놀이의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사회적 입장, 우기기, 지식량이다.

나는 아키를 상대로, 그 세개를 전부 이기고 있었다. 

여동생을 상대로 어른스럽지가 못하다고도 말한다.


"으으"

아키는 입을 삐쭉 내민다.

"가끔은 나도 이기고 싶어!"

"안 돼. 잘 들어 아키. 정의는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거야. 그게 운명이야. 기억해두렴."

"정의···"


아키도 나도 정의란 단어에 약했다. 언니가 건프라 놀이로 여동생한테 모조리 이겨버리는 거에 무슨 정의가 있냐고 지금에 와서는 생각하지만, 당시의 우리들은 정의가 정말로 좋았다.


그리고, 우리들이 좋아하는 하얀 건밤은 정의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 2 -


또 하나 떠오르는 건, 카운트다운에 관한 것.

어느 날 나는, 카이와 아키랑 로켓 발사를 보고 있었다. 카이는 아키와 같은 나이의 옆집 아이로 나한테는 동생 같은 존재였다.


발사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카이와 격투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점잖치 못한 12연승을 확정지은 무렵에 초읽기가 개시됐다.


우리 집은 카고시마 현의 타네가시마에 있고, 아버지는 우주 센터의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래서 위성의 발사는 연중행사나 같았는데, 그래도 감동이 희석되는 일은 없다.


대지를 흔들고, 배까지 울리는 소리.

터무니 없이 거대한 물체가, 말도 안 되는 힘으로, 똑바로 하늘을 향하는, 그 자태.

일찍이 누군가가 말했다.


로켓은 인간의 혼을 연료삼아 나는 것이라고. 무수한 인간의 긴 긴 노력이, 이 한순간에 불꽃이 되어 타오르고, 철로 된 덩어리에 제 1우주속도와 제 2우주속도를 돌파하는 힘을 부여하는 것이다.


"카이, 너도 남자라면 라이트 스터프를 지닌 남자가 되렴"

올바른 자질(right stuff)

혹독한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서 필요한 그 모든 것들.


- 3 -


언제부턴가, 나는 정의의 히어로를 동경했다. 정의의 히어로가 되고 싶었다.

그걸 위해서 강해지고 싶었다. 아니, 나는 내가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의의 히어로가 되기 위한 라이트 스터프가 무엇인지.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히어로와 악은, 언제나 종이 한장 차이다. 정의를 추구하는 마음이, 악을 낳는다.

그걸 깨닫는 건, 너무 늦었다.


- 4 -


이야기가 너무 앞서나간 것 같다. 나에 대해서 써두자.

나는 세노미야 미사키. 1994년에 타네가시마에서 태어났다.


아키와 카이와의 추억에서 미루어 짐작할수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상당히 지길 싫어하는 성미로 덤으로 친구도 적다.


날 때부터 머리가 좋은 편이라, 그게 좋지 못했다.


동년배의 아이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았고, 수업의 내용도 따분했다. 그런 태도를 취하고 있으면 적도 늘어나느 법으로, 자연히, 반격이 능해졌다.


초등학생 무렵에는 자주 그렇게 큰 싸움을 벌였다. 중학교 이후로는 맞붙어 싸우는 일은 없어졌지만, 대신 말로만 동급생을 울리거나 수업중에 교사와 실랑이를 벌이는 등, 그런 짓만 해댔다.


결과, 주변의 그 누구도 다가오려 들지 않게 됐다.

요컨대, 흔히 있는 우등생 타입의 <기분 나쁜 녀석>이었다.

여동생 아키가 없었다면, 나는 쭈욱 그대로였을지도 모른다.


- 5 - 


그 무렵의 나는, 말이 통하지 않는 어린애나 갓난아기가 거북했다. 그래서 여동생이 생긴다고 알았을 때도, 처음에는, 그리 반가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엄마 배가 커가는 걸, 처음에는 겁을 내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기분이 나빴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아이가 태어나는 이론쯤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눈 앞에서, 나와 같은 피를 이어받은 생명이 태어난다,는 일은 처음 겪는 체험이고, 이론만으로는 불식시킬 수 없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런 마음은 어머니가 갓 태어난 여동생을 나더러 안아보라 건넸을 때. 쭈글쭈글한 얼굴의 아키호가, 그 조그만 손을 뻗어 예상 못했을만치 강한 힘으로 내 손가락을 쥐었을 때에,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그 날, 나는, 아키호야말로 지상에 태어난 천사라고 이해했고, 그 확신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나는, 이 조그만 생명을 전력으로 지키자고 마음 먹었다.

태어나서 그 때까지, 자기 힘을 낭비하던 내가, 처음으로 발견한 목적이기도 했다.


야시오 카이쇼 즉 카이와 만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야시오 가는 세노미야 가의 이웃으로, 양가는 공동으로 육아를 하고 있었다. 그런 흐름으로, 나도 작은 카이의 기저귀를 갈게 된 거다.


- 6 -


그런 연유로, 아키호가 태어나고나서부터 나는 작정하고 여동생 바보 기질을 발휘했다.


깨어있는 동안 내내, 아키호를 돌보고 있었다···고 말하면 듣기엔 좋지만, 둘이서 같이 소란을 피웠다,고 하는 편이 가까울 거다. 그런 나를 꾸짖지 않고 칭찬해준 양친의 참을성에 감사하고 싶다.


아키와 카이가 날마다 커지는 모습을, 나는 애틋하고 간절하게 지켜봤다. 걸을 수 있게 된 후에는 갈수 있는 모든 장소에 두사람을 끌고 다녔다. (무리를 해서, 자주 양가의 어머니한테 혼났다.) 생각나는 모든 놀이를 같이 했다.


통한인 것은 중학교 때 발표한 작문 <여동생 아키호의 보편적 매력에 관한 일고안>이다.


타이틀대로의 내용인데, 아키호가 얼마나 귀여운가를 원고지 30장에 걸쳐 역설한 건 그렇다쳐도, 그 귀여움이야말로 자원문제와 인구문제의 더블바인드로 고민하는 지구인류의 구제가 되리라 단언한 것은, 다소 호들갑이었다.


이어서, 지구외 생물체와 만나게 된다면, 만물에 통용하는 아키의 귀여움이야말로 커뮤니케이션의 히든 카드가 되리라 쓴 건, 약간 상궤를 벗어났었다고 생각한다.


득의양양 발표한 다음날, 아무리 그래도 말이 지나쳤다고 깨달았는데, 이미 엎지러진 물로, 담임은 그 작문을 콩쿨에 응모했고, 입선까지 이루고 말았다.


이후 <천재 미사키>의 횡포에 고민하는 타네가시마 교사들 사이에, 그 작문이 <최종수단>으로써 계승된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내 세계는 크게 변했다.

그래도, 내 변화는 거기까지였다. 

여전히, 가족 이외의 친구는 없었고, 그 이외의 인간을 어디선가 깔보고 있었다.

그게 바뀌게 된 것은 키미지마 코우란 남성과의 만남을 통해서였다.


- 7 -


"인간이란 시스템은 말이지, 하나의 개인으로 완결되어 있는 건 아니야. 사람은 많은 인간과 연결되어, 그 안에서 자신을 도출하고 있어.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은, 작은 법이야. 그러니, 자기를 바꾸고자 한다면 인간관계를 바꿔야해. 그게 가장 빠른 지름길이야"


키미지마 코우는 그렇게 말했다.

그와의 만남으로, 나나 많은 인간의 인생이, 얼마나 변화했는지를 생각하면, 그 말도 무게를 갖는다.


그 때, 나는 분명, 이렇게 답했다.


"확실히 인간은 타인의 영향을 받지만, 남한테 기대본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코우는, 기쁘다는 듯 끄덕이곤, 엄숙하게 낭송했다.


"나는 내 운명의 지배자요. 내 영혼의 선장은 오직 내 자신 뿐이다."

"시인가요?"

"그래. 너에게 딱맞는 시다 싶어서."


나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 고개 숙였다. 그리고, 그후로는, 만나는 사람마다, 그 말을 썼다. 

아키한테도 카이한테도, 그리고 밋치한테도.


돌이켜 보면, 그 사람은, 언제나 사실을 말했다.

절반만큼의 진실이지만.

AND




나는 영업 약속을 전부 취소하고 다양한 미디어로부터 보내져온 메일의 취재의뢰를 처리하면서 다급히 사무소로 돌아갔다. 지금은 영업을 할 때가 아니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취재 전화나 메일을 처리하는 것만으로 상당한 시간을 잡아먹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녁이 되어있었는데 취재 신청은 끝날 줄 몰랐다.


찰칵찰칵 문을 여는 소리가 울렸다. 히마리가 온 것이다.


학교에 있을 때 히마리한테 연락을 넣어서 「양성소에는 오늘부터 다니지 않아도 되니까 학교가 끝나면 곧장 사무실로 와 달라」고 전해뒀었다.


「하야토 있었나. 수고가 많다」

사무소에 들어오고는 히마리는 언제나처럼 예의 바르게 말했다.

「고생했어. 앉아」

「음」


히마리는 종종걸음으로 걸어와 응접용 소파의, 언제나의 정 위치에 앉았다.

나도 일단 메일을 처리하는 걸 관두고 책상에서 떨어져서 히마리와 서로 마주보고 앉았다.


「학교에선 아무 일도 없었어?」


「늘 그랬듯 나는 열심히 수업을 받았다. 지금 마침 일본사 수업에서 다이쇼 시대를 다루고 있는데……일본사 교사가 열렬한 좌익이라서 말이지. 수치심도 체면도 없이 거짓말을 늘어놓기에 놈의 날조를 나는 엄격히 추궁해주었지. 치고받을 직전까지 갔지만 나는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놈은 틀림없이 코민테른에서 보낸 자임이 분명해.」


「학교에서까지 그런 설전을 하고 있는 거야?」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짓만 하고 있으니까 이렇게나 용모가 좋은데도 남학생들한테 기피당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 사실을 히마리는 깨닫지 못한 모양이다.


「당연하다. 일본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우선은 자기 주변의 사상부터 고쳐주어야 해. 그 같은 교사를 방축하는 것은 국가에 필요한 일이다. 내가 심판을 내려야만 해.」


그렇게 말하고 히마리는 가슴을 폈다. 언제나와 다름없는 히마리다.

무심함을 가장해고 나는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면 어젯밤 음성 업로드 사이트에 잔뜩 목소리를 업로드 한 거 같던데.」


「그래. 나는 분발했다고 생각한다. 100개는 업로드하지 않았을까. 하야토가 노력해주고 있는데 정작 중요한 내가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다. 어제 해보고 상당히 익숙해졌다. 앞으로는 매일 최저한 50개는 업로드 하고자 생각하고 있다.」


「히마리의 목소리 터무니없이 화제가 되어 있다고.」


「그런가? 어떤 사람이 들어준 것일까? 일본국민에게 내 열의가 조금이라도 전해졌다면 기쁜 일이다.」


아무래도 히마리 본인은 자기가 일약 이름을 알렸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다. 오늘은 학교에 갔을 건데 아무한테도 지적당하지 않은 것일까.


하지만 생각해보니 내가 그 사실을 안 것도 대낮이 되고나서였다. 인터넷에서는 심야부터 떠들썩했겠지만 대형 미디어가 움직이는 건 낮부터다. 아침까지 인터넷 삼매경인 고등학생이 아닌 이상 동급생이 몰라도 무리는 아니다.


그리고 대형 미디어를 통해서 일반인이 이 소동을 알게 되는 것은 빠르면 『보도 뉴스18』에서 특집으로 편성되는 내일 저녁부터일까……아니 그 전에 내일 아침 일찍 스포츠 신문지면에 히마리의 컬러 사진이 딸려서 등장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현시점만 해도 취재 신청은 20사를 넘기고 있었다. 취재 없이 멋대로 기사로 다룬 쪽이 많은 걸 감안하면 머지않아 히마리의 이름은 일본열도를 맴돌 게 될 것이다.


「아마도 내일에는 히마리는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게 될 거야. 좋든 나쁘든 단숨에 메이저로 올라서겠지. 팔려던 방향과는 크게 다른 모양새로……」


「단숨에 메이저로? 차근차근 쌓아 올린다고 말했던 건 하야토가 아닌가?」


히마리는 석연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한숨을 내쉬면서 나는 말한다.


「그런데 현실은 재밌어……」

「기운이 없군. 하야토 어쩐 일이냐? 열이라도 있는 거 같아.」


히마리는 소파에서 일어서서 내가 앉은 소파까지 와서는 내 바로 옆에 다시 앉았다.

그리고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내 이마에 손을 얹었다. 히마리의 손은 따뜻하다.


「열은 없는 것 같군.」


슥 하고 손을 거둔 히마리와 가까이서 시선을 마주했다.


잠시 동안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물끄러미 히마리의 얼굴을 직시했다.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이 흐름을 타고 돌파해야 할까.


반쯤 아연하게 생각하고 있으려니 갑자기 히마리는 얼굴을 붉히고 창피하다는 듯이 시선을 피했다.


「히마리, 본판으로 승부해볼래?」

나한테 시선을 되돌린 히마리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본판, 이란 무슨 뜻이지?」


「히마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란 소리야. 무엇하나 꾸미지 않은 히마리로, 아이돌로서 어디까지 통용되는지, 해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지도 몰라. 아니 그보다는 일이 여기까지 이른 이상은 우리들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가 않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승부야 당연한 일이지 않나? 내 용모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내 생각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아주 당연하다는 투로 히마리는 답했다.


애매모호하고 속임수가 판치는 예능계에서 히마리는 먼지만큼도 이 세계에 영합할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히마리 머릿속에서는 허구에 몸을 맡긴다는 방법은 완전히 상정 밖이겠지. 원래가 어디까지건 외곬수인 것이다.


탁 하고 나는 무릎을 쳤다.


「좋아 하자. 나도 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몰라. 하지만 히마리를 히마리 그대로 밀어보고자 해. 신청 온 취재를 전부 수락하고 연기도 없이 가식도 없이 전부 히마리의 생각대로 행동해 볼까. 히마리는 사상 최초의 맨 얼굴 그대로의 아이돌이다.」


「나는 하야토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직 나도 공부가 부족하단 뜻일까……」 계속해서 히마리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띄웠다.



「에잇! 핫! 하앗!」

히마리의 기합이 울려 퍼진다.


그 손에는 진검이 들려있다. 예리하게 은색으로 빛나는 일본도의 칼날은, 역시나 가지고 있어야할 사람이 지니면 범접할 수 없는 무게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검도 수련복을 착용하고 새하얀 머리띠를 이마에 두르고서 히마리는 연무를 펼쳤다.


그 발놀림에는 털끝만큼도 망설임이 없고 실로 훌륭했다.

「에잇! 핫!」

이곳은 히마리의 자택 도장.


히마리가 손에 든 일본도는 물론 진짜로, 도 교육위원회로부터 등록증을 교부받았다는 모양이다. 이 집에는 예부터 이어져 내려온 칼이 적은 모양이다. 촬영용으로 들고 나온 것은 카구라 가에 있는 최상급 칼로 일찍이 도쿠가와 장군에게 내려 받은 명검이라고 히마리는 말했다.


벽 옆에는 TV 카메라와 프로그램 제작 스태프가 비좁게 늘어서 있었다. 나도 그 안에 섞여 히마리의 연무 모습을 보고 있다.


욱일TV의 황금 시간대에 방영되는 버라이어티에서 히마리의 특집이 편성되어 오늘은 그 촬영이다.


히마리의 기합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옆에 있는 디렉터가 나한테 얼굴을 가져다대고 속삭인다.


「이것 참 근사한 그림이 되겠어요. 이거는~ 이렇게 아름다운 무인은 본 적이 없어. 무엇보다 연무가 진짜배기예요. 도저히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어떻게 답해야할지 알 수 없어서 무난한 대답을 했다.


「그나저나 오리바 씨 회사는 좋은 탤런트 분을 가지셨군. 진검을 휘두르는 극우 소녀―음, 실로 멋져. 평범한 우익이나 과격단체로는 아무런 그림도 못 되지만……아직 열여섯이고 초가 붙을 정도의 미모의 소유자에 그라비아 아이돌인 극우라고요. 이건 정말 놀라운 운명의 만남이야. 이 아이는 틀림없이 엄청난 일을 일으킬 겁니다.」


「카구라의 언동은 다소 격하지만요……내보낼 수 있을까요, 그쪽 방송으로」


반신반의 심정으로 나는 물었다. 욱일TV가 과격파도 아연해 할 법한 히마리의 솔직한 말을 정말로 내보낼 수 있을지 어떨지 불안했던 것이다.

디렉터는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답했다.


「그야 위는 스폰서와의 문제도 있으니까 이런저런 소릴 듣게 되겠죠. 나랑은 관계없어. 재밌으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내가 흥미 있는 건 시청률이야. 오른쪽이니 왼쪽이니 하는 건 사소한 문제로 시청자의 흥미를 끄는 게 바로 TV의 정의입니다. TV가 올바르다느니 바르지 않다느니 그런 이야기조차 넌센스. 문제는 많은 시청자님이 봐주느냐 마느냐 입니다.」


「최근에 들어선 TV가 거짓말투성이라고 분노를 쏟아내는 의견도 대두하고 있으니까요.」


「정말 바보 같은 일이야. 거짓말이라면 어떻단 말입니까? 우리들한테 불평을 늘어놓기 전에 몇 백, 몇 천만 명의 시청자님께 불평을 말해야하는 거죠. 우리들은 시청률로 시청자가 바라는 걸 판단하고 있을 뿐이니까요. TV 프로그램도 시청자와 같은 레벨로 자리잡는 법이죠.」


디렉터가 말하는 「시청자님」이란 단어에는 시니컬한 울림이 있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 답한다.


「하지만 요즘 들어 TV는 연전연패예요. 미디어에 관여하는 사람으로서 TV가 좀 더 똑바로 해주지 않으면 곤란합니다.」


「네에, TV가 융성했던 시대로 세상을 되돌아가는 일은 두 번 다시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찾아보면 TV니까 비출 수 있는 이런 그림과 만나는 것도 가능하죠. 생각해 보세요 그녀만큼 흥미를 돋우는 소재는 1년에 한 번 만나면 다행인 레벨입니다. 이건 대박이 될 거에요.」


감탄한 시선으로 히마리를 지켜보던 디렉터는 문뜩 나한테 시선을 향한다.


「그러고 보면 그녀 아직 무명이었던 무렵에 AC의CM에 발탁됐었죠. 무슨 수완인가요?」


「얼마 전까지 창통에 있었거든요. 재적하고 있었던 사업부가 선별 선물로 하나만 일감을 준 거지요. 그게 AC. 작은 안건이지만 나름대로 도움이 됐지요.」


「창통! 오리바 사장님 창통이었나요! 이건 또 무슨 연유로!」


디렉터는 역력하게 경탄의 표정을 띄웠다. 남 일이 아니라는 모양새다. 대형 키 스테이션과 창통은 그야 당연히 깊고 깊은 관계다.

나는 어깨를 들썩였다.


「이런저런 일이 있었습니다. 노코멘트인 하겠습니다.」


「극우 정치계 아이돌에 창통을 관두고 프로덕션을 시작한 사장. 아니 정말 이건 재밌네요. 어떻습니까? 사장님 특집도 세트로 하는 건?」


「잠시만요. 신신당부 하는데 제 이야기는 다루지 말아주세요. 아시겠습니까? 신신당부 하는 겁니다.」 당황한 나는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아하하 농담입니다. 사장님 정도 되는 소재는 차고 넘치니까요.」


능청스런 어조로 디렉터는 말했지만 어디까지 농담인지 수상쩍다. 다소는 주의해둬야 할지도 모른다. 히마리의 연무를 바라보면서 나는 확인한다.


「그런데 이 영상은 언제 방송 됩니까?」


「빠르면 이번 주 중에는 편집해서 내보낼 겁니다.……그런데 TBM의 『올스타 일본』도 그녀의 검도 연습풍경을 내보낸다고 말씀 하셨죠……? 그쪽은 예정이 언젭니까?」


「글쎄요……촬영은 끝났으니까 모레나 글피쯤에는 방영 되도 이상하지 않겠지만……」


사실은 모레라고 예정을 들었지만 타사의 일정까지 나불나불 누설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딱히 나는 TBM이 싫은 것도 아니고 욱일TV에 신세를 진 것도 아니다.


디렉터는 팔짱을 끼고서 툴툴 혼잣말처럼 말을 한다.

「그건 안 좋네……음, 오늘 돌아가면 바로 편집해서 모레는 어떻게든 밀어붙여 보고 싶네요.」


만약 방송일이 겹친다면 히마리의 임팩트가 커져서 메리트가 크다.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진검까지 들고 나온 건 귀사뿐입니다. 카구라가 흔쾌히 진검을 OK해줄 거라곤 생각 못했거든요.」


「그래도 말이죠. 기왕이면 제일 빠르게 저지른 걸 당해낼 수는 없어서요.」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들은 히마리가 도장에서 연무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나랑 히마리는 사무소 소파에 앉아 나란히 TV를 보고 있었다. 히마리의 특집이 방영되는 걸 리얼타임으로 체크하고 있는 것이다.


형식을 따라 물 흐르듯 일본도를 휘두르는 히마리가 탁하고 칼집에 검을 넣는 대목에서 화면이 전환됐다. 이번에는 히마리가 도장에 정좌하고서 리포터와 대면하는 영상이다.


무릎을 구부려 눈높이를 맞춘 리포터가 히마리한테 질문한다.


「히마리 쨩은 그라비아 아이돌로 활동하고 있죠. 그리고 CM이나 잡지 모델도……그런 한편으로 정치단체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요. 어째서 아이돌을 하고 있는 건가요? 혹은 정치 단체를 하고 있는 이유도 괜찮습니다. 알려주세요.」


도복이나 머리띠는 그대로인 채, 히마리는 일본도를 옆에 내려놓고 정좌한 자세 그대로 말한다.


「나에게 있어 아이돌 활동은 곧 정치활동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냐. 나로서는 어째서 귀공이 그 같은 의문을 품는지를 모르겠다. 나는, 연예계에 있는 것과 정치단체를 운영하는 사이에 하나도 모순이 없으니까 말이야.」


「과연……아이돌은 정치란 말씀이시군요……흥미 깊은 말이네요. 그러면 정치활동의 포부를 말해주시겠어요?」


히마리는 카메라에 진지한 눈빛을 향하며 가슴을 폈다.


「진정한 우익은 일본에 오직 나 하나다. 유권자 제군 우리 일본은 지금 대동아 전쟁 이래 최대의 국난을 맞이해 있다. 정치는 혼미하고 일본민족은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상실할 수밖에 없는 분수령에 서있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일본을 사수해야만 한다. 그 어떤 고난이 닥쳐도 나는 내 정권을 세워 일본을 구해내 보이겠다. 나는 일본을 짊어질 각오가 있다.」


「어디서부터 딴지를 걸란 소린지! 아니 근데 자기 정권을 세우는 건가요!? 그거 쿠데타 예고!?」


리포터가 경악해 하는데도 히마리는 차가운 시선을 보낸다.


「이해가 안 되는 군. 어째서 쿠데타로 이어지는 거지? 정권을 얻는 방법은 폭력적 수단만 있는 게 아니다. 나는 당원을 모아서 내 정당을 키울 생각이다. 거기서부터 정권을 탈취하기 위한 전략은 임기응변으로 생각해 나가야하겠지.」


그런 식으로 여느 때와 똑같은 히마리와 리포터 사이의 미묘한 엇갈림이 TV에서는 계속되고 있었다.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서 나는 TV에서 시선을 떼고 히마리를 봤다. 그러자 히마리는 눈을 충혈 시키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왜, 왜 우는 거야……?」

내가 묻자 히마리는 눈물을 훔치면서 답한다.


「내 활동이……이런 식으로 전국에 소개될 줄이야……지금 만큼 아이돌이 되길 잘 했다고 생각한 일은 없다……하야토……고맙다……정말로, 정말로 고맙다……」


감동한 것인지 몸은 옅게 떨고 있었다.

내가 티슈 상자를 내밀자 그걸 히마리는 몇 장이고 뽑아서 코를 풀었다.


「울고 있을 틈이 없어. 앞으로도 취재가 대량으로 들어와 있어. 그라비아 모델 일도 나날이 늘고 있고 히마리를 표지모델로 팍팍 밀고 싶다는 신청도 끊이지 않는 상황이야. 그리고 TV의 버라이어티 방송으로부터 고정으로 출연제의까지 왔어. 이렇게 된 이상 물러설 수 없으니까 이 노선으로 갈수 있는 곳까지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어. 무척 바빠지겠지만 괜찮겠어?」


「나는 완수할 작정이다. 진작부터 나는 내 목숨은 버렸으니까 말이지.」

히마리의 대답에는 비장감이 감돌았다. 각오를 정했다는 소리겠지.


「하지만 히마리한테는 전부 말해두는 건데, 솔직히, 이건 험난한 여정일 거야. 이번 일로 높아진 지명도는 히마리한테 양날의 검이 될 거야. 지금까지 내가 영업으로 뿌린 씨앗은 괴멸했을 게 분명해. 특히 대형 기업 CM에 히마리가 출연하는 건 절망적이야. 제로부터 전략을 고칠 필요가 있어.」


「어째서 괴멸했다는 거지?」


「그야 간단하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정치적인 발언을 반복하는 히마리를 상품 선전에 쓰고자 생각하는 기업은 일단 없을 거니까.」


「어째서냐. 재계는 나를 제일 먼저 지원해야 하지 않나. 나는 일본에 있어 틀림없는 아군인 것을.」


「그렇게 생각하는 건 히마리뿐이야. 경제활동은 전 세계와 이어져 있지. 특히 일본기업의 아시아권과의 결합은 깊고 정치적인 파풍은 가능한 피하고 싶다고 바라고 있어. 그렇기에 히마리를 상품 선전에 쓰는 일은 스스로 지뢰를 밟는 거나 다름없는 일인 거야.」


「나는 반드시 아시아를 침략하고자 계획하고 있는 건 아니다. 국경문제만 없다면 전쟁을 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아시아 각국과 손을 잡고서 구미와 대항하는 일도 필요할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찌 연약한 자세. 기업이야말로 국가와 함께 해야 한다. 적은 혼노지에 있다……」


히마리의 말에 제빨리 나는 못을 박는다.


「그건 잘못됐어. 원래 경제활동과 정치활동은 서로 융화될 수 없는 법이야. 어떤 경제활동이건 모든 소비자로부터 사랑받는 상품을 만드는 게 최종목표야. 반면 정치활동은 대립하는 조직을 타파하고 정권을 탈취하는 게 목표지. 정치는 항상 폭력적인 자세를 내재하고 있어. 기업의 입장을 세우자면 어지간히 정치적 이익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을 제외하면 가능한 정치와 거리를 두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자세인 거야. 그리고 미디어도 연예인도 기업이 돈을 내주니까 성립한다고 해도 무방해.」


결코 기업만이 아니다. 내년도 방위청의 일도 절망적이고 관청이나 공익단체도 경원하겠지. 제 2차 세계대전의 패배의 주박이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일본에서는 특히 정치적 발언은 섬세한 주의를 요하는 문제다.


히마리는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하지만 나로서는 아이돌은 정치활동 외에 달리 무엇도 아니다. 처음부터 하야토도 알고 있었을 거다. 무엇보다 정치적인 정점을 목표로 할 거라면 탤런트로 정점에 서는 게 가장 빠르다고 나한테 알려준 건 하야토와 유카리가 아닌가. 나는 정치의 세계에서 정점에 서기 위해서 아이돌의 길을 택한 것이다.」


「그건 나도 파악하고 있어. 하지만 일에는 순서란 게 있는 거야. 연예인으로 밀어도 흔들리지 않는 지위를 확립한 다음에 정치에 진출한다면 파풍을 극복하는 게 가능했을 거야. 사실 제대로 정치도 알지 못하는 탤런트 의원・스포츠 선수 의원이 이 세상엔 넘쳐나지. 하지만 지금은 히마리는 탤런트로 얼굴을 알리는 도중이었어. 파풍은 강하고 히마리 지명도 상승에 질투하는 인간도 많아. 그렇기에 나도 이 방향이 정답인지 어떤지 판단하기 어려운 거지. 무엇보다 이렇게 된 이상은 선택의 여지는 없지만……좌우지간 계획을 새하얀 캠퍼스에 다시 그릴 필요가 있다는 건 기억해주었으면 해.」


「나는 하야토한테 폐를 끼쳤다는 뜻인가……? 하야토 만큼 소중한 사람에게 내가 알지도 못하고 폐를 끼쳤다면……나는, 배를 갈라서 사죄를 해야만……」


히마리는 서글픈 표정을 지으며 안타깝다는 듯이 입술을 깨물었다. 히마리라면 진짜 할복할 법 하다. 당황해서 나는 말을 한다.


「폐라는 소리는 아냐. 히마리의 세일즈 포인트를 수정해야 한다는 얘기지.」


어흠 하고 헛기침을 하고 나는 냉철하게 설명을 한다.


「잘 들어 히마리. 아이돌은 만인의 사랑을 받는 행동을 하는 게 일이야. 정말은 적을 만들면 안 됐어. 어떤 유명한 아이돌은 악수회에서 재회한 팬의 이름을 전부 기억하고 악수를 할 적에 『또 만났네요 ○○씨』라고 말을 거는 걸 항상 했다고 하지. 그 아이돌은 훗날 유명해져서 팬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게 됐어. 아이돌은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그 정도 고생을 해서 아군을 늘리기 위해서 전력을 다하는 거야.」


「과연……아이돌은 교주 같은 것이로군……신자가 외면하지 않게끔 주의하고 계속 숭배받아야만 해……」


「그런데 히마리는 적이 많아지고 말았어. 열렬히 히마리의 발언을 지지하는 아군도 있지만 발언을 듣는 것도 싫다고 하는 적도 있어. 이렇게나 흑백을 확실히 나눈, 만인을 위한 게 아닌 아이돌은 보통은 없다는 소리야. 아니 그게 아이돌인가 여부부터 미심쩍어. 그래서 히마리의 세일즈 포인트는 이제껏 없던 것이 된 거야. 그 방법을 내가 아직 떠올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한다는 의미야.」


「……알았다. 무엇보다 내가 정치가로서 비약할 수 있는가 어떤가의 분기점이라 해도 좋을 것 같군. 나도 열심히 방책을 다져서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하야토 앞으로도 부디 나를 지탱해다오.」


「이미 이 노선을 바꾸는 건 가능할 것 같지가 않아. 결과가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들어온 취재를 전부 받고 스케줄이 맞는 한 TV나 잡지의 일도 계속 받을 수밖에 없어. 바빠지겠지만 지금은 무아지경으로 해보자. 계속 싸우기만 한다면 새로운 계기를 붙잡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지.」


스스로를 달래는 의미도 담아서 나는 강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어느 쪽이건 더 이상 우리들한테 선택의 여지는 없다. 

이렇게 된 이상 갈 수 있는데 까지 전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요츠야 3번가 원룸 사무소.

취재차 찾아온 동서신문의 기자와 히마리는 마주하고 있었다. 나는 책상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본다.


「히마리 씨의 목적, 일본정치의 정점에 선다는 말씀은 어떤 의미인가요?」

기자의 질문에 히마리는 열심히 답한다.

「뻔하지. 현행제도를 전제로 한다면 내가 내각 총리대신이 되어야 할 거야.」

「하지만 열여섯은 무립니다. 피선거권이 없습니다.」

기자는 미심쩍은 시선을 히마리한테 향했다.


「알고 있다. 운동을 해 헌법이나 법률을 바꾸면 그만이다. 연령제도를 철폐해도 되고 나만 특별권한을 부여해도 좋겠지. 특별대우는 예컨대 10년 한정의 로마 시대의 독재관 같은 지위여도 된다.」


「특별대우라니? 말도 안 돼! 당신은 차별을 조장하는 겁니까? 신분제도를 용인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상기된 목소리로 기자는 말했다.

동서신문의 이 기자는 처음부터 전면대결 태세였다.


모든 취재를 수락한다는 방침을 히마리와 정한 참이니까 상대가 우익・중도・좌파인지 어떤지를 고르지 않고 신청 순으로 스케줄을 세팅했을 따름이었다. 애초에 취재측이 적대 자세일지 여부는 수락하는 시점에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일단 취재를 수락했다면 제아무리 뜻이 맞지 않을지라도 함부로 내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괜히 더 인상이 나빠져서 지독한 기사나 방송을 타게 될 뿐이니까 말이다.


히마리는 답답하다는 듯이 지적한다.


「내 얘기를 차별이나 신분제도를 의도하고 유도하지마라! 귀공의 취재에는 악의가 느껴진다.」


「차별이 아니면 뭐란 말입니까? 법률로 자기만 특별대우라니 가당치도 않은 망상입니다. 그런 걸 인정할 국민이 있을 리가 없지.」


「있나 없나 여부는 일본국민이 판단할 일이다. 귀공이 아냐. 일본국민은 언젠가 나를 찬동해주리라 나는 믿고 있다.」


「특별대우를 말입니까?」

기자는 코웃음 쳤다.


히마리는 발끈해서 눈꼬리가 올라갔는데 내가 침착하라는 포즈를 취하자 심호흡을 반복해서 평정심으로 대답한다.


「귀공은 마르크스주의자 부류인가? 진실로 만민이 평등한 사회야말로 다툼과 차별로 넘쳐날 뿐이다. 권력이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은 인간존재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어떤 사회도 기댈 큰 나무는 필요로 한다. 나는 큰 나무가 될 의지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일본국가의 안녕이며, 그를 위한 기계장치로서 내 몸을 혹사할 생각이다.」


「질 나쁜 독재자의 사상과 똑같군. 자기 권력만 추구하는 망언입니다. 정말로 국민의 행복을 생각한다면 국민주권을 지켜야 할 겁니다.」


「그 결말이 현행 일본정치의 저락이다. 기댈만한 기반을 잃은 민족의 미래는 통탄스러운 법이다. 일본에 있어 지금이 최후의 분수령이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를 채찍질 해서 결기하고자 다짐한 거다.」


「애당초 어째서 당신이 해야만 한다는 거죠? 일본의 헌법은 국민의 주권이 보장돼 있습니다. 국민의 판단을 믿지 못하는 겁니까?」


「항상 국민이 올바르다고는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실수한 쪽이 많다고 해도 되겠지. 그런 국민을 나는 부드럽게 포용하고 설령 백만의 민초들한테 원망을 사더라도 국가의 기틀을 재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심이 나왔네요. 당신은 국민을 믿지 않아. 국민을 노예화해서 권력을 사유화하고자 획책하는 선동가야.」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기자는 히마리를 펜 끝으로 가리켰다.

히마리는 한숨을 쉰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한들 귀공의 기사 내용은 처음부터 정해져있는 모양이군. 오늘은 여기에 귀공이 찾아온 것도 그저 나를 취재하고서 기사로 썼다는 사실이 필요했기 때문일 테지?」


「상당히 독단적인 판단이네요. 나는 물어야할 질문을 하고 있는 겁니다.」


취재 개시로부터 20분―

체재를 갖출 만큼의 최저한의 시간이 경과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자한테 고한다.


「죄송합니다 슬슬 시간이라서요. 카구라의 다음 예정이 있어서요. 이쯤에서 물러가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 기자가 쓰는 기사는 모든 방면에서 히마리를 비판하는 게 될 것 같다. 막는 건 불가능하고 그건 그걸로 어쩔 수 없다. 비판도 받아들이지 않아서는 이 세계에서는 활동할 수 없는 것이다.


거기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미 히마리의 찬반양론이 만연해 있다. 오히려 비판 쪽이 많을 정도다. 비판 기사 한 두개는 새삼 호들갑 떨 일도 아니다.



TV 방송국 회의실에서 히마리는 유명한 개그맨 두 사람한테 둘러싸여 있었다. 버라이어티 방송에 게스트로 히마리가 등장하는 것이다.

리더 격 개그맨이 히마리한테 묻는다.


「그럼 히마리 쨩은 연예계를 정치가를 향한 등용문으로 생각하고 있는 거야?」

「음. 바로 그렇다. 오히려 연예계는 그것 말곤 흥미가 없다.」


단호하게 히마리가 단언하자, 다른 한쪽의,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의 개그맨이 카메라를 바라보면서 큰 소리를 낸다.


「단언하는 히마리 쨩 완전 멋져. 특히 말투까지 멋져. 무사란 느낌.」

「역시 입후보 하는 거야? 어째 좀 상상이 안 되는데.」


리더 격인 사람의, 머리 나빠 보이는 질문이다. 하지만 카메라가 돌지 않을 때 그와 미팅을 하면서 느낀 바로는, 결코 바보 같은 탤런트는 아니었다. TV용으로 시청자 수준에 맞춘 그 나름의 전투 스타일인 걸 거다.


「현행법에 따라 입후보할지 말지는 그 때가서 정할 거다. 좌우지간 나는 다급해. 지금 당장이라도 정권을 짊어지고 싶을 정도야.」


「그럼 그럼, 입후보를 안 한다면 어떻게 할 거야?」


「내가 총수를 역임하고 있는 정치결사 일본대지회에서는 항상 당원을 모집 중이다. 나와 함게 일본의 변혁을 뜻하는 사람들과 정권을 탈취하기 위해서 일어설 가능성도 있겠지. 폭력적 수단은 상정외이긴 하나……그래도 막상 찬스가 온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일어나게 될거야.」


「그거 설마 쿠데탄가요!?」


「나는 평화적 수단으로 정권의 선양을 목표로 하고 있다. 허나 쿠데타를 처음부터 부정할 생각도 없어. 문제는 내 뜻에 대의가 함께하는가 여부다.」


다시금 분위기를 띄우는 역의 사람이 끼어든다.


「멋있다. 히마리 님 사는 모습 정말 최곱니다. 히마리 님이 총리가 된다면 경찰대신 정도 시켜주세요!」


「경찰대신 같은 직함은 최소한 지금은 존재하지 않아. 하지만 귀공이 내무문제를 연구하고 보다 근사한 경찰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면……그 같은 직함을 창설해서, 귀공에게 부탁할 가능성은, 없지는 않지.」


「도지사나 오사카 부 지사나 나가노 현 지사나 미야자키 현 지사나 각 지방 톱에는 개그맨 같은 사람 잔뜩 있잖아? 우선은 그 쪽 방면을 목표로 삼아 볼 생각은 없는 거야?」


리더 격인 사람의 질문에 대해서 히마리는 단호한 어조.


「지방정치는 내 지향점이 아니다. 나는 일본 국가를 지탱하기 위해서 살고 있다. 국정이 내 모든 것이야.」


회의실에서의 촬영은 시종일관 부드러운 분위기였다.


개그맨 2인조가 히마리를 둘러싼 촬영은 한 시간 반이나 계속됐다. 프로그램은 30분이고, 그 중 히마리의 출연은 15분 정도 예정이었으니 편집해서 재밌는 부분만 사용하게 될 테지.


다만 최소한 히마리를 비판하는 부분은 전혀 없었고, 2인조도 히마리의 흥미 깊은 부분을 끌어내는데 열심히였다. 히마리의 방송활동에 큰 플러스가 될 방송이 될 게 분명했다.



갖가지 취재를 소화하고, 히마리는 미디어를 석권했다. 히마리의 강경한 연설의 일부가 TV로 방영되어 논의에 불을 지폈다. TV는 재밌고 우스꽝스럽게 히마리를 다루는 경우가 많았고 정말로 위험한 발언은 전부 편집해서 방송했다. 어떻든 간에 이만큼이나 TV에 이름이 알려진 것은 연예활동에 있어서 플러스 말곤 아무것도 아니었다.


언론의 영역인 신문이나 잡지에서는 칠할 쪽이 비판하는 측에 돌아섰다. 히마리를 지지하는 목소리까지 규탄하는 성명을 내어 히마리 같은 아이가 TV에 대두하는 일은 일본에 있어서 불행한 사태라고까지 단언하는 신문이 많았다. 남은 3할은 시시비비는 그리 언급하지 않고, 특이함으로 히마리를 다루었다.


인터넷에는 히마리 지지 목소리가 많았고 팬과 안티 간의 다툼이 가열돼, 더욱 더 히마리의 지명도를 끌어올리는 결과가 됐다. 어느 블로그든 게시판이든 히마리의 화제를 건드리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로 인터넷은 히마리가 완전 공략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애초에 히마리의 음성이 퍼져서 대형 미디어가 들썩이는 매개 역할을 했던 게 인터넷이다. 주목을 모으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좌우지간 모든 미디어를 통해서 히마리가 항간을 놀래키며 비판과 칭찬의 갖가지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절찬만 모여도 화제는 끌어 오르지 않는 법이다. 지지 목소리가 태반을 점해 버리면, 그 좁은 세계에서만 의견이 나눠지며 좀처럼 바깥까지 지명도가 확대되지 않는다.


적당한 비판이 있어야만 그 화제는 생명력이 강해진다. 그리고 비판이 격렬하면 격렬할수록 비판자의 의도와 반대로 결과적으로 화제가 크게 확산되는 힘이 된다. 비판의 세기가 지명도 상승의 부스터 역할을 한다고 말해도 좋다. 유명인들 입장에서 비판이 달갑지 않은 건 틀림없지만, 그래도 비판이야 말로 최고의 거름이 되어주는 것이다.


히마리도 그건 예외가 아니다. 비판의 대 합창에 노출됐기에 일시적인 「화제의 사람」으로 히마리는 끝나지 않았다. TV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 얘기까지 수없이 들어와서 아이돌로서의 지반을 단숨에 굳힐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인 것이다.



제작회사에서 나는 방송 프로듀서와 미팅을 했다.

프로듀서는 말을 한다.


「이주 간 하루, 통째로 구속하게 될 겁니다. 『학교DAISUKI!』에서는 거기서 두 편 분량을 촬영하는 형식입니다. 인기 그룹 『스피릿G4』이 스케줄을 중심으로 조정하는 거라서요, 확실히 일자가 정해진 것도 아니죠. 그 때 그 때 연락을 해서 스케줄을 조정하게 되는데요……그걸로 괜찮으신가요?」


『스피릿G4』은 대형 연예 프로덕션・알렉스에 소속된 남성 사인조 유닛을 조직한 국민적 인기 아이돌 그룹이다. 네 명 각자가 따로따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라이브 때는 네 명이 집결을 해 팬서비스를 한다는 방법론을 채택했다. 그런 탓에 라이브의 열기가 장난이 아닌 걸로 유명한 그룹이다.


그리고 『학교DAISUKI!』는 TV 프로그램 중에서는 유일하게 네 명이 한 장소에 모이는 프로그램으로, 여성층의 높은 지지를 얻어 고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스케줄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하겠습니다. 우리 회사의 카구라가 인기 장수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는 기특한 대답을 했다.


「그녀 TV적으로 최고의 캐릭터예요. 근년에 드물게 보는 신 클래스. 시청률 절대로 폭발할 걸요.」


「카구라의 언동은 괜찮을까요? 가끔씩 캐릭터를 만들고 있는 거라 오해하는 사람이 있는데요, 카구라는 진심입니다. 저도 그렇게나 진지하게 정치를 염려하는 아이는 아직까지 본 적이 없어요. 그 부근은 사전에 이해가 없으면 트러블의 근원이 되므로 거듭거듭 확인해 두고 싶습니다만……」


「괜찮아. 괜찮아. 정말로 위험한 부분은 편집해서 자를 거니까요. 하지만 가능한 본바탕 그대로의 그녀를 밀어 붙이고 싶네요. 그게 그녀의, 그리고 프로그램의, 최고의 어필이 될 거라 생각해요.」


프로듀서는 만족한 얼굴로 말을 잇는다.


「이 프로그램은 높은 시청률을 계속 기록하고 있습니다만 현 상태에 안주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어요. 근년 들어 예산이 축소해서 프로그램도 사고팔고(四苦八苦)지만 그래도 우리들은 그 범위 내에서 가능한 어그레시브 하게 시청률을 추구하고 싶습니다.」


「요즘 같은 TV불황 시대에 머리가 숙여지네요. 그 자세가 오랜 세월 높은 평과를 얻고 있는 요인이겠죠. 카구라를 이해해주신다면 저희들도 전면적으로 협력하겠습니다.」


내가 그리 말하자 프로듀서는 기획서를 건넸다.


「프로그램에서의 그녀의 역할은 학생주임 교사로, 고등학생을 지도하는 역할을 검토 중입니다. 그녀 리얼한 고등학교 2학년이었죠? 그러니까 『고등학교 2학년 열혈교사 히마리』란 캐릭터로 푸시를 하게 될까 싶네요.」


「설마하던 교사 역할인가요! 카구라라면, 확실히 잘 어울리는 생각이 드네요. 재밌는 포지션입니다.」


「그렇죠? 베스트 배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도가 과격하지 않을지 조금 걱정됩니다만……」


「다소라면 문제없어요. 근년 들어 오냐오냐 응석만 받아온 고등학생들이, 동세대의 교사한테 엄격하게 지도받고 울음을 터트리는 정도가 그림도 되니까요.」


시종일관 프로듀서는 이 기획이 기대돼서 주체를 못하겠다는 모습이었다. 특히 『학교DAISUKI!』에는 애착이 강했는지 이 프로그램에 한해서 프로듀서가 직접 현장에 나가 디렉터 업무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빠르면 다음 촬영부터는 히마리가 참가해줬으면 하는 의향인 듯 촬영 스케줄이 정해지는대로 연락을 해주기로 했다.



「축하해 히마리. TV 고정 프로그램이 한 건 정해졌어. 이건 기념할 만한 일이야. 앞으로도 계속해서 일감이 들어올 거야.」


사무소에 온 히마리를 향해 나는 입을 열자마자 그런 말을 했다.


「고정이란 게 뭐지?」

다소곳이 신발을 정돈하면서 히마리는 물었다.


「정기적으로 출연하는 방송이 정해졌단 뜻이야. 매주 같은 시간에 히마리가 TV에 나오는 거야. 그것도 거의 간판 탤런트 취급이야. 갓 데뷔한 아이돌 치고는 굉장한 일이라고.」


나는 뜨겁게 말했는데 히마리는 그리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응접 소파에 툭하니 앉아 감흥 없는 기색으로 나를 바라본다.


「내 목표는 탤런트 같은 게 아니다. 탤런트로서 칭찬을 받아본들 기쁨은 느껴지지 않는군. 하지만 TV에 등장하는 기회가 늘었다는 얘기는 일본대지회의 목표에 한걸음 다가섰다고도 할 수 있겠지.」


「그런 말이야. 다른 방송에서도 여러 어프로치가 있으니까 앞으로도 계속해서 출연 프로그램이 정해지게 될 거야. 오히려 히마리의 스케줄을 어떻게 조정할지 걱정에 여념이 없어. 학교를 쉬어야 하는 일도 늘어날 거라 생각하는데 거부감은 안 드니?」


「나는 자발적으로 공부를 하고 있으니까 일부러 학교의 수업에서 배울 필요가 있는지 어떤지를 물으면 다소 의문이 든다. 오히려 하야토와 같이 있는 편이 훨씬 공부가 되니까 놀라울 정도야.」


나는 책상에서 일어나 히마리를 마주보면서 소파에 앉아 질문해 본다.

「학교랑 실제 사회를 비교하면 그야 그렇겠지. 대학에 진학할 예정은 있어?」


「없다. 언니도 고교를 졸업하고 곧장 우리 도장을 이었다. 나도 대학 따위 갈 시간이 있다면 정치결사 일본대지회의 정치활동에 전력을 다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쓸데없는 시간을 소모할 상황이 아니야.」


「그렇구나……하지만 히마리는 탤런트가 아니라 정치가를 목표로 삼고 있는 거잖아. 내 입장에서는 대학진학을 권하고 싶은데……」


히마리의 학력 수준은 모른다. 하지만 머리는 나쁘지 않은 아이란 사실은 충분히 알고 있다. 히마리는 결코 천재 과는 아니지만, 타인이 아득히 미치지 못할 만큼의 견실한 노력가다. 나로서는 제대로 교육환경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히마리가 정할 일이기도 하다.


「일본은 아량이 깊은 나라다. 일본의 톱은 중졸이건 대졸이건 관계없다. 그릇이 중요해. 나는 매일 연찬을 쌓아올려 그릇을 연마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교육은 어딘가에 가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흡수하는 것이다.」


「그러니……그렇게까지 히마리가 단언한다면야, 그것도 괜찮으려나……그럼 히마리의 공부시간을 내가 마음에 둘 필요는 없다는 소리지?」


확실히 히마리가 말한 대로 일본은 해외와 비교해서 학벌의 영향은 작다. 학력이 벽이 되는 경우는 대기업 입사를 목표로 할 때로 거의 한정돼 있다. 일본에는 실력이 있다면 사람은 위에 올라서는 풍토가 있다. 다나카 가쿠에이처럼 중졸이 총리대신까지 오르는 건 일본만의 현상이다. 이게 유럽이나 중국이었다면 계층이 고정되어서 엿장수 맘대로는 안 되는 법이다.


예를 들어 자유・평등・우애를 내걸은 시민혁명으로 민주주의의 토대를 만들었다고 여겨지는 프랑스의 실상은 어린아이 무렵에 소수의 엘리트 그룹에 들어가는지 아니면 하층민인지 명확하게 결정되고야 마는 꿈이 없는 엘리트 사회다. 얼마 전까지는 미국도 폭 넓은 층에 기회가 있는 나라였지만 근년 급속하게 유럽 화 되었다.


그에 비하면 일본은 아직 개방성이 있는 편이라, 공부 엘리트를 우수하다느니 훌륭하다고는 본심으로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 진흙탕 같은 환경 속을 실력으로 올라서는 사람 쪽이 존경의 대상이 된다. 무사였던 이에야스보다 농민에서 올라선 히데요시 쪽이 사랑받는 사회인 것이다.


구미의 지배층은 일반적으로 극히 우수한 사실은 분명하고, 대중을 절대적으로 바보 같은 존재라 여기고 있다. 한편 일본의 지배층은 대중과 차이가 없다.


어쩌면 풍토만 그런 게 아니라 일본은 대학교육의 내용물이 빈약하고, 동시에 학생의 모티베이션도 대입시험이 끝나면 뚝하고 끊어지는지라 중졸과 대졸의 실력에 큰 차이가 없는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닐까. 어딘가에 취직을 원하는 셈도 아닌 히마리한테야 대학에 가는가 마느냐가 인생을 규정하는 재료가 되지 않는 사실은 분명하다. 적어도 히마리한테 강하게 진학을 권할 이유는 없을지도 모른다.


「내 인생은 일본국가와 일체화돼 있다. 조금이라도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할 여유는 없어. 그렇기에 나는 사람 앞에 수영복 차림까지 감수하고 있는 거다.」


그런 히마리의 말에 나는 무심코 옅게 쓴웃음을 지었다. 수영복 그라비아와 정치적 성공이 결부되어 있는 사실에 그만 웃음이 나오고 만 것이다.


「하야토? 뭐가 우습지?」


「아니, 아무것도 아냐. 알았어. 앞으로는 히마리의 공부 시간은 고려하지 않고 전력으로 이름을 알리는데 매진하도록 할게.……그런데 히마리를 주목하는 사람들이 엄청난 기세로 늘고 있어. 그래서 말인데 프로덕션 입장에선 히마리의 팬클럽을 창설해볼까 생각하고 있어.」


「팬클럽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알려주지 않겠나.」


「히마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팬클럽에 입회하면 우선적으로 히마리의 최신정보를 접할 수 있다든지, 팬굿즈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거야. 그 밖에 다양한 서비스가 있어도 돼. 생일에는 히마리가 쓴 직필 편지를 받는다든지, 팬클럽 회원만 모아서 히마리와 악수회를 한다든지……물론 팬클럽에 가입하는데는 돈이 들지. 월 500엔으로 연간 6000엔에 회원이 될 수 있는 형식을 취하는 거야. 하지만 딱히 이걸로 한 몫 잡고자 하는 건 아냐. 금액면만 따지면 적자일 거야. 팬을 소중히 하기 위해서 필요한 활동의 하나인 거야.」


히마리는 팔짱을 끼고 신음한다.


「흐음……정치결사 일본대지회로는 안 되는 건가? 당원이 된 자에게는, 내 연설을 우선적으로 들려주거나 정권탈취를 위한 회합에 참가자격을 주면 된다. 모은 당비의 수지보고도 전 당원한테 확실하게 할 테니까, 하야토가 말하는 팬클럽보다도 공명정대한 것이 될 거야.」


「당원……그건 어떨까.……혹시 이번 사태로 당원이 늘었어?」


내 물음에 히마리의 얼굴이 번뜩 빛났다.


「아직은 적지만 확실히 늘고 있다. 신청은 인터넷에서만 받고 있는데 당원 수는 단숨에 150명에 도달했다. 이대로 간다면 이달 중에는 200명을 넘길 테지. 불과 얼마 전까지 나 혼자만 당에 소속되지 않았던 사실을 떠올리면 현격한 성과다. 역시 나는 하야토를 따르길 잘 했다고 생각한다.……하야토에겐 감사를 해도 모자라다……」


「150명이란 사실은 당비는 매달 3000엔이니까……월 4만 5천 엔의 당비가 들어오겠구나……상당한 액수인 걸」


뭐 이 레벨에서 매스컴의 주목을 받아 일약 화제의 사람이 된다면 이 정도겠지. 150명은 의외로 적은 편이지만 극우사상을 내걸었으니 어쩔 수 없다. 어쩌면 일시적으로 천 단위 정도는 도달할지도 모르지만, 그 언저리에서 막히게 되지 않을까.


제 아무리 폐색감이나 불황이 암울한 세상을 감싸고 있는 현실이라도, 이 일본에서, 그리 간단히 극우단체가 만 단위의 인원이 될 리도 없다. 일정 수까지 간다면 그 후에는 조금씩 감소하게 될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니……히마리가 정치결사로 팬을 모으고 있는데, 또 하나의 팬클럽을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인가……정치결사는 좀 그렇지만 팬한테서 이중 착취를 할 수도 없지. 한동안은 히마리한테 맡겨 볼 수 밖에 없겠어.」


「하야토 맡겨다오. 일본대지회는 틀림없이 당원 30만 명으로 확대될 것이다. 자우당의 정원수는 100만 명 전후니까 아직은 월등히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일정한 발언권을 지닌 정치결사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거야. 몇 년 후에는 당원 1000만 명을 목표로 삼고 싶다.」


히마리의 목소리는 정열과 확신으로 가득했다.


「그런 뜻은……아니지만……」]


대답이 궁해서 나는 말을 흐렸다. 히마리는 진지 그 자체였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거듭거듭 이해하고 있었기에 결의를 짓밟는 말은 꺼내기 힘들다.


무엇보다 팬이 늘어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좌우지간 지금은 장래의 정치적인 트러블을 걱정하기보다 그 지반을 굳히는 쪽이 중요하다.


그리고나서 취재나 프로그램 출연 일정을 조정하고서 히마리의 스케줄은 빼곡이 들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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