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 단평은 52분부터 시작)


애니메이션이란 보는 사람, 제 기준에서는 읽는 사람인데요. 어떤 식으로 읽고 어떤 식으로 느끼고 어떤 식으로 남한테 말하거나 자기 의견을 내놓느냐, 그런 거니까 그런 의미로는 저에게 있어서 애니메이션은 정답이랄 게 없단 말이죠. 이게 정답이고 올바른 거니까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기 위해 노랠 듣는거나 마찬가지죠. 진짜 좋은 노래 들으면 노래방에서 부르고 싶어지죠. 그 경우 원곡에 얼마나 가까운가 그래서는 모창이 되어버리죠. 그럴 게 아니라 자기 나름의 창법이 나오는 법이고, 좋은 애니메이션을 보면 아무래도 논하고 싶어지는 법이고, 논한 내용은 만약 감독이나 작가가 거기 있다면 '그건 잘못됐어!'라고 말할지도 모르죠. 그래도 자기 생각에 '이편이 재밌잖아?'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 흥을 돋구는 게 즐거운 거 아냐?'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게 제가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수단이고, 그래서 저는 애니메이션을 읽는다고 말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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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은 제가 보기에는 장면 우선의 작품이란 말이죠. 시나리오 우선의 작품은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는 이야기 우선의 작품이 아니라, 이런 장면을 보여주고 싶다는 장면의 스톡이 방대하게 있고, 그걸 차례차례 선보이는 이야기란 말이죠. 말하자면 댄스곡인 겁니다. 노래만 듣는 게 아니라 춤도 봐야하는데, 그 노래와 가사랑 뭐랄까 곡 자체가 그렇게 싱크로하지 않아도 상관없죠. 에반게리온은 이야기 자체와 내보이는 장면의 싱크로는 그다지 고려하지 않고, 그보다는 멋이나 재미로 잘 접착되어 있는 이야기라고 저는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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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이 마모루 씨는 안노 히데아키는 캐릭터에 대한 애착이 없다고 말했지만, 그럴 리는 없죠. 자기가 만든 캐릭터는 귀엽고 불행하게 만들고 싶지 않지만, 이야기의 운명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 줄수는 없는 거에요. 자기들이 생각한 이야기의. 그러니까 그 이야기 안에서 있는 힘껏, 그 사람답게 살게 해주는 것 말곤 불가능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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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Q)는 악의 네르프와 미사토 씨가 통솔하는 조직이죠 뭐시기 조직. 전 벌써 까먹었고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니코니코 탄막을 보고) 아 뷔레! 고마워요! 악의 네르프와 정의의 뷔레란 구도의 싸움이 되어있죠. 그래서 악의 네르프 쪽에는 아버지인 겐도 씨와 부하인 후유츠키 씨밖에 없죠. 그 조직, 네르프는 후유츠키가 혼자 다 도맡아 일을 하고 있는건가 그런 말이 많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그게 왜 그런식으로 되어있는가 하면 역시나 장면 우선이라 그런거죠. 


팟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장면을 보여주고 싶다. 그렇게 신지가 외톨이가 된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 다른 인간은 일절 내보이고 싶지 않다. 그런데 후유츠키 만큼은 반드시 필요하니까 등장시킨거죠. 이게 모순되어 있다는 걸 작가도 알면서 한겁니다. 장면으로서의 무게나 멋을 담아냈지만, 정합성이 문제에 오르면 그것보다는 역시나 그리고 싶은 장면을 그리게 해줘란 식인 거죠.


그래서 저는 어째서 후유츠키가 그렇게 필요했는지가 마음에 걸렸어요. 왜 후유츠키는 (겐도에게) 나는 마지막까지 함께하지라고 말하는 건지, 여러분도 생각을 해보세요. 의견이 듣고 싶네요.


(니코니코 탄막을 보고) BL관계. 후유츠키X겐도니까. 유이를 만나고 싶으니까. ETC.


그럼 다음 질문입니다. 에바Q에서 마음에 걸렸던 장면은 후유츠키입니다만, 신지와 후유츠키가 장기를 두는 장면이 있었지요? 그게 왜 필요했는지. 저도 왜 후유츠키가 네르프에 있는가 하는 것과 왜 신지와 후유츠키가 장기를 두는 장면이 필요했는지가 무척 마음에 걸렸어요. 어째서일까요.


(니코니코 탄막을 보고) 이런저런 탄막 읽음.


마지막 질문입니다. 어째서 겐도는 그렇게나 유이를 되살리려 드는 걸까요? 에바의, 이번 Q말이죠. 아니 그보다는 파-Q에 걸쳐서 대체로 문제나 화근의 태반은 겐도가 죽은거나 다름없는 아내를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단 일념으로 터무니 없는 짓을 벌이고 있는거죠. 그래서 인류의 적이 되어서까지 노력하고 있는건데, 겐도가 유이를 만나 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벌써 30년 전에 죽은 거란 말이죠. 그 목적이 무엇일까요.


(니코니코 탄막을 보고) 사랑하니까. 사죄하고 싶다. 목소리가 하야시바라 메구미니까. 등등.


이상의 세가지예요. 어째서 후유츠키는 겐도와 이렇게까지 함께하는 걸까. 어째서 신지와 후유츠키의 장기를 두는 장면이 필요했는가. 그리고 보는 사람은 일정부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겐도는 유이를 되살리고 싶다는 목적의 이유가 확실치 않다. 그게 저는 마음에 걸렸어요.


반대로 제가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던 건 14년 후의 세계였던 거. 뭐랄까 옛날의 TV판이나 극장판에서 세월이 흘렀으니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에바만 만들게 허락해주는 자신을 투영하고 있는 거겠거니. 딱히 팬이 진보하지 않았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영화 작가는 관객한테 그리 관심이 없어요. 자기한테 밖에 관심이 없으니까, 굳이 말하자면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이 제타 건담이나 역습의 샤아 당시에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건담만 만들게 허락해주는 나'란 표현이죠. 크리에이터는 거기에 반응하는 법이죠. 그러니까 14년후의 이야기에 등장인물이 변함 없다는 건 그건 에바에 마음이 사로잡혀 진보하지 못한 관객이 아니에요. 작가는 그쪽엔 관심이 없어요. 그게 아니라 언제까지고 에바를 만들도록 강요당하는 자신으로 보면 전체적으로 우화인 거죠.


그러니까 에바 파에서 신지가 목숨을 걸고, 세계를 파멸시키면서까지 구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아야나미 레이가 이번엔 나오지 않죠. 사라져버렸죠. 


(중략)


왜 신지와 장기를 두는가. 겐도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유이와 다시 한번 되살려서 뭘 하고 싶은 걸까. 그리고 왜 겐도는 신지한테 차가운 걸까. 이러한 것들로 어떤 생각을 해봤어요. 제가 이런식으로 생각해봤을 뿐이니까요. 제 생각으론 말이죠 신지는 후유츠키의 자식이에요. 정말 단순한 얘기죠.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은 아침드라마예요. 안노 군이 정말 좋아하는 순정만화를 영상화시킨 게 아침드라마라고 하는데요, 그래서 모든 게 혈연관계의 인과관계로 질척질척한 거죠. 이유가 뭐냐면 장기씬이에요. 그건 캐치볼이죠. 영화에선 흔히 소년과 어른이 캐치볼을 한단 말이죠.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이란 메타포인 것이죠. 그렇지만 에바에서 캐치볼을 시킬 순 없죠. 우선 인도어한 세계란 것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캐치볼을 시키면 부자관계란 사실이 너무 명백해지니까. 장기를 두는 정도가 딱인 거에요. 그렇게 신지와 후유츠키가 부자관계란 사실을 넌지시 알려주는 거죠.


그리고 어째선지 겐도도 갖고있지 않은, 이미 처분해버린, 유이의 사진을 후유츠키만 갖고 있는 이유는 그야 유이가 자기 애인이니까. 그러니까 사진을 언제까지고 지니고 있는 것이죠. 겐도마저 버린 사진을. 그럼 어째서 후유츠키는 겐도한테 나는 계속해서 자넬 따르겠어라고 말하는 건지, 그건 BL 같은 게 아니에요. 그건 속죄예요. 츠미호로보시인 겁니다.


그럼 어째서 겐도는 유이를 되살리고 싶은 걸까. 여기까지 말하면 다들 짐작은 가지요? 신지의 진짜 부친은 누구인지를 추궁하고 싶으니까 그런 거에요. 에바 신극장판 네번째는 질척질척한 거에요. 아침드라마의 질척질척한 세계에 SF의 방대함을 얹은 터무니 없는 걸 만들고자 하는거죠. 안노 히데아키가 하고자 하는 것은 하드SF 순정만화인 겁니다. 그래서 나오는 이야기는 순 잤어? 안 잤어?란 거죠. 즉 '너 후유츠키랑 잤냐?' 자기 부인한테 말하면서 '가리지 않고 자는구나! 발정난년!' 이렇게 말하면 '당신도 네르프의 모두랑 쳐잤잖아!' 같은 얘기가 되는거죠.


그러니까 에바 안의 세계의 파멸은, 장면, 영상으로는 정말 세계의 파멸이 그려지지만, 실제로는 14살의 어린애한테 있어서의 세계의 파멸인 부모의 불화나 이혼 같은, 정말은 난 누구의 자식일까 같은 이런 점이 근본적으로 아침드라마의 아이덴티티란 말이죠. 그걸 남성적으로 읽거나 SF로 읽거나 심리학으로 읽으면 전부 미궁에 빠지게 되는 겁니다. 이거는 차라리 스트레이트 하게 아침드라마로 읽어내면 '난 대체 무엇일까'='내 친부모는 누구일까' 같은, 한국의 한류드라마로 생각해주세요. 에바는 그걸로 괜찮아요.


그래서 겐도는 신지한테 차가운 거에요. 왜냐면 유이와 만나 추궁하기 전까지 자기 친자식인지 분명치 않거든요. 그래도 겐도도 마음이 흔들리고 있죠. 아마도 유이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채 사라져버렸으니까,  그러니까 어쩌면 내 친자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 앞에 이 소년이 자기 아내가 자신을 배신한 증거일지도 모르니까 이율배반의 감정을 품게 되는 거죠.


이번 작품이 잘만들어졌다 싶은 게, 에바 파에서 신지는 아야나미를 구하기 위해서 세계를 파멸시켰죠. 그럼에도 구하지 못한 이야기란 말이죠. 다시 말해서 세계를 파멸시켜도 상관없으니 이 소녀를 구하고 싶다. 그래도 구하지 못했단 이야기로, Q는 겐도가 유이를 위해 세계를 몇번이고 파멸시켰다는 이야기죠. 스타워즈입니다. 부자가 같은 일을 되풀이 하고 있다. 아나킨 스카이워커와 루크 스카이워커는 아주 똑같은 상황에 직면해, 그리고 포스의 암흑면에 의지하는가 아닌가의 선택만 다르단 말이죠. 이 선택의 차이는 아마도 후속작에서 나올거에요. 한사람의 소녀를 위해 이 세계를 파멸시켜도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이후의 전개 차이가 에바 스토리의 바리에이션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에바 파의 레이는 한마디로 서로 가까워질 수 없는 부자란 말이죠. 이카리 신지와 이카리 겐도를 가까워지게 만들고자 했으나 결국엔 그걸 이루지 못하고 죽어버린 소녀. 그러니까 에바의 후속작은 서로 가까워질 수 없는 부모겠죠. 유이와 겐도, 거기에 후유츠키가 포함될지도 모르겠네요. 이 사람들의 사이를 원만하게 만들고자 하는 신지. 그리고 절망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죠. 이게 해피엔딩과 언해피엔딩으로 갈리게 되는 부분이죠.


그러니까 제 생각에 에바는 아침드라마로 봐라. 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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