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전


당신이 좋아요.

그런 말을 하면 당신은 당혹스러워 할까?

당혹스럽지는 않을거라 생각한다.

만난 적도 없는, 당신을 어째서 내가 좋아할 수 있는지 미심쩍어할 거다.

지당한 일이다.


이걸 읽고있는 당신과 나는 만난 적도 없고, 어쩌면, 평생 만날 일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것은 짝사랑이나 다름없다.


이 수기를 쓰고있는 동안 나는 이걸 손에 쥐고 읽어줄 당신에 대해서 줄곧 상상해왔다.


당신은, 어떤 사람일까? 남성일까 여성일까, 연상일까 연하일까. 

어떤 경위로 이 수기를 손에 넣은걸까.


이 수기를 손에 넣는데는 상당한 고초가 있었을 거다. 

정보적, 물리적인 프로텍트를 몇겹이나 쌓았다.


경고문도 읽었으리라 생각한다. 

이 수기를 손에 넣는 것 만으로, 당신이나, 당신의 가족한테 심각한 위기가 닥칠 가능성이 있다고.


딱히 협박하려는 것도 아니다. 단순한 사실이다.


경고와 프로텍트를 돌파해서, 당신은, 지금, 이렇게, 이 수기를 읽고있다.


당신은, 어떤 심정으로, 그 고생을 한 걸까. 흥미가 동했던 걸까, 한가해서 그랬던 걸까, 혹은 그들─300인 위원회라 불리우는 존재와 싸울 단서를 손에 넣기 위해서일까. (※1)


이런 식으로, 당신을 생각하면서, 이 수기를 쓰는 건, 무척 즐겁고, 귀중한 체험이었다.


여기에 쓰인 내용은 어느 여성의 기록이다.


자기중심에 제멋대로고, 주위 사람에 민폐를 끼치는 여자이지만, 좋은 점도 있다. 

적어도 심심하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그녀에게 관심을 가져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1) 마지막 목적이었다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이 수기에는 그들과 싸울 단서는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에 대해서는 첨부 파일을 참조해주길 바란다. 다만 안전성은 보증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수기를 읽으면 알게 되리라.


제 1장


-1-


이 무렵,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여동생 아키호와 놀던 시절의 기억이다.

아키호가 아직 어린 무렵에 했던, 건프라 놀이.

나는 하얀 건밤을 쥐고, 아키는 빨간 작크를 꼭 쥐었다.


"부웅, 뿅뿅, 콰광!"

"부웅! 빠앙!"


두개의 기체는 백색과 적색 빛이 되어 사상의 우주를 날아오른다.

진공에 번뜩이는 빔광선. 그 사이를 수놓는 슬라스터의 분사염이 그리는 곡선.

두기는 떨어졌다, 접근했다, 다시 떨어지며, 숙적처럼 연인처럼 대치한다.


"동강! 댕강! 퍼퍼펑!"


마침내 건밤의 샤벨이 작크의 토마호크를 양단내고, 재차 한칼에 제네레이터를 꿰뚫었다.


유폭. 폭발. 설령 헬멧을 쓰고 있더라도 즉사를 면치 못할 일격.


"이제 끝, 건밤의 승리!"

"이긴 거 아냐 토마호크로 피했는 걸"

"땡! 토마호크로 샤벨은 못 막아요~ 샤벨은 빔이라서 토마호크를 베어낸답니다~"

"토마호크도 빔이거든"

"그건 빔이 아니랍니다."


룰이 없는 놀이의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사회적 입장, 우기기, 지식량이다.

나는 아키를 상대로, 그 세개를 전부 이기고 있었다. 

여동생을 상대로 어른스럽지가 못하다고도 말한다.


"으으"

아키는 입을 삐쭉 내민다.

"가끔은 나도 이기고 싶어!"

"안 돼. 잘 들어 아키. 정의는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거야. 그게 운명이야. 기억해두렴."

"정의···"


아키도 나도 정의란 단어에 약했다. 언니가 건프라 놀이로 여동생한테 모조리 이겨버리는 거에 무슨 정의가 있냐고 지금에 와서는 생각하지만, 당시의 우리들은 정의가 정말로 좋았다.


그리고, 우리들이 좋아하는 하얀 건밤은 정의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 2 -


또 하나 떠오르는 건, 카운트다운에 관한 것.

어느 날 나는, 카이와 아키랑 로켓 발사를 보고 있었다. 카이는 아키와 같은 나이의 옆집 아이로 나한테는 동생 같은 존재였다.


발사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카이와 격투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점잖치 못한 12연승을 확정지은 무렵에 초읽기가 개시됐다.


우리 집은 카고시마 현의 타네가시마에 있고, 아버지는 우주 센터의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래서 위성의 발사는 연중행사나 같았는데, 그래도 감동이 희석되는 일은 없다.


대지를 흔들고, 배까지 울리는 소리.

터무니 없이 거대한 물체가, 말도 안 되는 힘으로, 똑바로 하늘을 향하는, 그 자태.

일찍이 누군가가 말했다.


로켓은 인간의 혼을 연료삼아 나는 것이라고. 무수한 인간의 긴 긴 노력이, 이 한순간에 불꽃이 되어 타오르고, 철로 된 덩어리에 제 1우주속도와 제 2우주속도를 돌파하는 힘을 부여하는 것이다.


"카이, 너도 남자라면 라이트 스터프를 지닌 남자가 되렴"

올바른 자질(right stuff)

혹독한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서 필요한 그 모든 것들.


- 3 -


언제부턴가, 나는 정의의 히어로를 동경했다. 정의의 히어로가 되고 싶었다.

그걸 위해서 강해지고 싶었다. 아니, 나는 내가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의의 히어로가 되기 위한 라이트 스터프가 무엇인지.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히어로와 악은, 언제나 종이 한장 차이다. 정의를 추구하는 마음이, 악을 낳는다.

그걸 깨닫는 건, 너무 늦었다.


- 4 -


이야기가 너무 앞서나간 것 같다. 나에 대해서 써두자.

나는 세노미야 미사키. 1994년에 타네가시마에서 태어났다.


아키와 카이와의 추억에서 미루어 짐작할수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상당히 지길 싫어하는 성미로 덤으로 친구도 적다.


날 때부터 머리가 좋은 편이라, 그게 좋지 못했다.


동년배의 아이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았고, 수업의 내용도 따분했다. 그런 태도를 취하고 있으면 적도 늘어나느 법으로, 자연히, 반격이 능해졌다.


초등학생 무렵에는 자주 그렇게 큰 싸움을 벌였다. 중학교 이후로는 맞붙어 싸우는 일은 없어졌지만, 대신 말로만 동급생을 울리거나 수업중에 교사와 실랑이를 벌이는 등, 그런 짓만 해댔다.


결과, 주변의 그 누구도 다가오려 들지 않게 됐다.

요컨대, 흔히 있는 우등생 타입의 <기분 나쁜 녀석>이었다.

여동생 아키가 없었다면, 나는 쭈욱 그대로였을지도 모른다.


- 5 - 


그 무렵의 나는, 말이 통하지 않는 어린애나 갓난아기가 거북했다. 그래서 여동생이 생긴다고 알았을 때도, 처음에는, 그리 반가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엄마 배가 커가는 걸, 처음에는 겁을 내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기분이 나빴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아이가 태어나는 이론쯤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눈 앞에서, 나와 같은 피를 이어받은 생명이 태어난다,는 일은 처음 겪는 체험이고, 이론만으로는 불식시킬 수 없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런 마음은 어머니가 갓 태어난 여동생을 나더러 안아보라 건넸을 때. 쭈글쭈글한 얼굴의 아키호가, 그 조그만 손을 뻗어 예상 못했을만치 강한 힘으로 내 손가락을 쥐었을 때에,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그 날, 나는, 아키호야말로 지상에 태어난 천사라고 이해했고, 그 확신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나는, 이 조그만 생명을 전력으로 지키자고 마음 먹었다.

태어나서 그 때까지, 자기 힘을 낭비하던 내가, 처음으로 발견한 목적이기도 했다.


야시오 카이쇼 즉 카이와 만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야시오 가는 세노미야 가의 이웃으로, 양가는 공동으로 육아를 하고 있었다. 그런 흐름으로, 나도 작은 카이의 기저귀를 갈게 된 거다.


- 6 -


그런 연유로, 아키호가 태어나고나서부터 나는 작정하고 여동생 바보 기질을 발휘했다.


깨어있는 동안 내내, 아키호를 돌보고 있었다···고 말하면 듣기엔 좋지만, 둘이서 같이 소란을 피웠다,고 하는 편이 가까울 거다. 그런 나를 꾸짖지 않고 칭찬해준 양친의 참을성에 감사하고 싶다.


아키와 카이가 날마다 커지는 모습을, 나는 애틋하고 간절하게 지켜봤다. 걸을 수 있게 된 후에는 갈수 있는 모든 장소에 두사람을 끌고 다녔다. (무리를 해서, 자주 양가의 어머니한테 혼났다.) 생각나는 모든 놀이를 같이 했다.


통한인 것은 중학교 때 발표한 작문 <여동생 아키호의 보편적 매력에 관한 일고안>이다.


타이틀대로의 내용인데, 아키호가 얼마나 귀여운가를 원고지 30장에 걸쳐 역설한 건 그렇다쳐도, 그 귀여움이야말로 자원문제와 인구문제의 더블바인드로 고민하는 지구인류의 구제가 되리라 단언한 것은, 다소 호들갑이었다.


이어서, 지구외 생물체와 만나게 된다면, 만물에 통용하는 아키의 귀여움이야말로 커뮤니케이션의 히든 카드가 되리라 쓴 건, 약간 상궤를 벗어났었다고 생각한다.


득의양양 발표한 다음날, 아무리 그래도 말이 지나쳤다고 깨달았는데, 이미 엎지러진 물로, 담임은 그 작문을 콩쿨에 응모했고, 입선까지 이루고 말았다.


이후 <천재 미사키>의 횡포에 고민하는 타네가시마 교사들 사이에, 그 작문이 <최종수단>으로써 계승된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내 세계는 크게 변했다.

그래도, 내 변화는 거기까지였다. 

여전히, 가족 이외의 친구는 없었고, 그 이외의 인간을 어디선가 깔보고 있었다.

그게 바뀌게 된 것은 키미지마 코우란 남성과의 만남을 통해서였다.


- 7 -


"인간이란 시스템은 말이지, 하나의 개인으로 완결되어 있는 건 아니야. 사람은 많은 인간과 연결되어, 그 안에서 자신을 도출하고 있어.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은, 작은 법이야. 그러니, 자기를 바꾸고자 한다면 인간관계를 바꿔야해. 그게 가장 빠른 지름길이야"


키미지마 코우는 그렇게 말했다.

그와의 만남으로, 나나 많은 인간의 인생이, 얼마나 변화했는지를 생각하면, 그 말도 무게를 갖는다.


그 때, 나는 분명, 이렇게 답했다.


"확실히 인간은 타인의 영향을 받지만, 남한테 기대본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코우는, 기쁘다는 듯 끄덕이곤, 엄숙하게 낭송했다.


"나는 내 운명의 지배자요. 내 영혼의 선장은 오직 내 자신 뿐이다."

"시인가요?"

"그래. 너에게 딱맞는 시다 싶어서."


나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 고개 숙였다. 그리고, 그후로는, 만나는 사람마다, 그 말을 썼다. 

아키한테도 카이한테도, 그리고 밋치한테도.


돌이켜 보면, 그 사람은, 언제나 사실을 말했다.

절반만큼의 진실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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