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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에 특정 등장인물의 이름이 들어간다는 것은 '이번 권은 요녀석을 중심으로 사건이 펼쳐집니다'라는 신호입니다. 그런데 오컬트 로직은 각권의 부제에 이름을 올린 인물과 사건이 긴밀하게 접착되어 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죠. 오히려 사건과 독자가 핵심인물로 추정하는 캐릭터가 좀처럼 서로 맞물리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인물과 사건의 괴리는 오컬트 로직이 택한 서사적 구조에서 온다고 해야겠는데요. 우리가 부제에 특정 등장인물의 이름이 오르면 해당 캐릭터가 사건의 중심인물이겠구나 쉬이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오컬트x미소녀란 키워드의 조합만 보고도 대략적인 윤곽은 이내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괴물이야기 히타기 크랩>은 게의 특성을 지닌 괴이한테 자신의 무게를 빼앗긴 소녀의 이야깁니다. 괴이의 연원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센조가하라 히타기가 보고도 못본척 했던 사건의 진상에 도달하고, 과거의 무게를 되찾아 주는데 성공하죠.

 

<하트 커넥트>는 어떻습니까? 매권마다 감정증폭, 유아퇴행 등의 유사 오컬트가 문연부의 일상을 파괴하고 고난을 겪게되나 결국에는 극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대다수의 오컬트x미소녀물의 경우 오컬트가 주인공 내지는 그와 가까운 인물(히로인)의 일상을 위협하는 존재일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 위협을 극복하고, 파괴된 비일상을 일상으로 되돌렸을 때, 보다 완전한 일상을 손에 넣게 되는 공식입니다. 또한 우리는 그런 기본 공식을 경험적으로 이해하고 있죠.

 

그런데 <오컬트 로직>은 조금 다릅니다. 기본적으로 이 소설의 오컬트는 히로인을 위협하지 않습니다. <진초게 사쿠라의 칸타타>에서 다룬 죽지 않는 남자, 츠지노코, 살인마 잭 더 리퍼, <에니시다 쿠치나의 아우라>에서 다룬 도플갱어. 그 어느것도 히로인의 일상에 침입하지 않았고, 그저 현상으로 거기에 존재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오컬트란 이름의 비일상이 히로인의 일상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말은, 주인공이 히로인의 내밀한 아픔을 알고, 치유하고, 구원해주는 기본공식을 적용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컬트 로직의 오컬트란, 이를 해결함으로써 히로인을 구원케 해주는 통과점이 아닙니다. 이것이 <에니시다 쿠치나의 아우라>에서 도플갱어 사건과 부제에 이름을 올린 에니시다가 따로노는 위화감의 정체입니다.

 

그러면 대체 부제에 특정 등장인물의 이름을 넣는 이유가 뭔고하면은...저는 오컬트한테 위협을 받는 구해야할 히로인이 아니라, 그 오컬트와 가치관 충돌을 일으키는 캐릭터의 이름을 부제로 사용한 것이라 봅니다. 

 

<진초게 사쿠라의 칸타타>에서 죽지 않는 남자는 죽지 못하는 인생의 비애를 토로합니다. 거기에 진초게 사쿠라는 동정하지 않고, 연민하지 않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신의 어둠을 드러내며 정면으로 반박하죠.

 

<에니시다 쿠치나의 아우라>는 자존감, 개성, 정체성 등의 이야기기도 합니다만, 동시에 예술에 임하는 태도를 묻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에니시다 쿠치나는 혼을 벼린 음악이 외면받는 나날에 지쳐, 피아를 구별하지 않는 도플갱어로 전락한 카스미와 맞서면서 자신의 예술관을 속사포처럼 늘어놓습니다. 바로 이 점에 부제에 특정 히로인 이름을 사용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행여 <오미나에시 하기의 오라토리오>가 오컬트의 위협을 받는 소녀 구제하는 이야기가 된다면 요 글은 그냥 헛스윙이 되긋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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