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밍
까끌까끌한 혀를 빗삼아 털을 손질하는 고양이의 습성. 살균,보온 효과도 있으며 다른 고양이의 털을 그루밍 해주기도 한다. 처음 만난 고양이끼리 그루밍을 한다면 서로간의 경계심을 풀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애완 고양이의 경우 주인에게도 그루밍을 한다. 실용적인 기능 외에도 우애의 표현이기도 한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은 오돌토돌 돌기가 나 까칠한 고양이 혓바닥의 세례를 받으면 따끔할 뿐이다. 종족의 차이가, 서로 다른 형질이 애정표현을 온전한 애정표현으로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드는 셈이다. 그렇다고 고양이에게 그루밍을 그만두게 만들수도 없거니와 더 나아가 인간의 방식을 주입시킬수도 없다.
<유식>은 그런 이야기다.
<토키오>의 눈에 비친 <카미노에>는 타자와의 소통을 거부하고 목숨이 오고가는 위기를 게임 감각으로 즐기는 전파녀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토키오>가 보는 <카미노에>란 인간의 범주에서 탈선한 무언가다.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오히려 죽을 장소를 찾는 것처럼 심령 현상을 좇는 <카미노에>의 극단성. 타인의 시선에는 얽매이지 않는 분방함. 학교란 공동생활 공간에서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는 배타적인 태도. 고독이란 감정을 모르는 것 같은 의연함.
이 모든 것들이 <토키오>로 하여금 <카미노에>는 인간적인 부분이 결락되어 있으며, 따라서 그녀의 행동을 인간의 언어로는 해석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형성케 한다.
이런 전제는 <유식>이 호러소설에서 성장소설로 탈바꿈하는 기점에서 뒤집히는데, 구토질,리스트밴드,피살원망에 가까운 오컬트 탐구 등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카미노에>의 행동 원리가 일거에 설명되는 순간 무척 포카포카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마치 억지로 낭떠러지로 끌고가
추락하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서 웃어 보이는
무척이나 투박해 도무지 상식적인 인간의 애정표현이라곤 말할 수 없지만
<카미노에 유이>는 그런 서투른 인간이지만
서툰대로
분명히 <토키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있었으니까.
* GOTH와 비교하는 리뷰를 빈번하게 찾아볼 수 있지만...GOTH의 모리노가 카미야마의 일방적인 비호(사육이나 다름없는) 아래 있다면 서로가 서로의 근원을 알게되고 구원도 있었다는 점에서 유식 쪽이 훨씬 건전한 커플이란 느낌.
유식에 언급된 실재 작품들
* 마크 트웨인 <아담과 이브의 일기>
'아담은 사과를 먹고 싶었기에 먹은 게 아니다.
──금지되어 있었기에 먹은 것이다.'
* 사이죠 야소 <토미노의 지옥>
* 톰 티크베어 <롤라 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