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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4.16 링고의 운명드립 8
  2. 2011.05.21 사실 트위타 시작한 계기는 6


난 <운명>이란 말이 좋아.

흔히 <운명적인 만남>이라고들 하잖아?

단 하나의 만남이, 그 후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버리지.

그런 특별한 만남은 우연이 아냐.

그건 분명히 <운명>

물론, 인생에는 행복한 만남만 있는 건 아냐.

싫은 일, 슬픈 일도 한가득 있어.

혼자서는 어쩔수도 없는, 그런 불행을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는 건 

무척 괴로운 일이야.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해.

슬픈 일, 괴로운 일에도 반드시 의미가 있다고.

헛된 일 같은 건 하나도 없어. 

왜냐면 나는 운명을 믿으니까.

저마다의 입을 통해 긍정되기도 부정되기도 하는 운명론인데 링고가 이 운명드립을 친 것은 2화, 13화, 18화 도합 세번.

처음 저 발언을 한 시점의 링고는 슬픔이나 고통의 무게에 짓눌리는 게 두려워 현실도피를 하면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 것에 불과했다. 부모의 이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이 모모카가 되면 모든 게 좋아질 거라 믿고서 모모카의 일기장에 적힌 미래를 매일매일 수행하는 꿈꾸는 소녀. 사실 저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을 것이다. 단순히 모모카가 되기 위해서, 이성으로 사랑해야 하는 타부키가 들려준 말이기에 맹신하는 그런 그루피의 감각이었을 거다.

이러한 머리속 꽃밭 여인은 모모카의 일기장에는 적혀있지 않는 이레귤러의 개입으로 점차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기에 마침내 부모가 이혼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재혼한 아버지의 미래를 축도하는 문자 메세지를 보내고서 다시 한번 운명을 긍정하는 저 말을 되뇌이는 13화는 무척 효과적으로 링고의 정신적 성장을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다만 이쿠하라 쿠니히코 감독 본인은 이 시점에서도 아직 인생의 쓴맛을 모르는 철부지니까 가능한 입발린 소리를 의도했다고. 이제 곧 직면할 잔혹한 현실 앞에서도 과연 너는 여전히 운명을 긍정할 수 있겠니?란 의도에서.

그리고 17화의 라스트...

링고쨩 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하니?

아무리 괴로운 일이거나 슬픈 일이라도 반드시 거기에는 의미가 있고

헛된 일은 하나도 없다는.

네, 그거라면

그거 다행이구나.

우테나의 엘리베이터 신을 셀프 패러디한 건, 단순히 긴장감 조성에 효과적인 연출이라 그런게 아니라, 알을 깨고 나와 세계를 혁명할 수 있을런지 그 근원적인 질문을 링고에게....아님 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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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에서 마음에 든 장면을 골라 자못 잘난척 떠들 생각으로 시작한 건듸. 140자 제한이 생각보다 빡빡해서 곧바로 아 이건 안 되겠구나 싶더라. 미련없이 당초 계획은 폐기하고 씹덕글만 싸버릇 하다보니, 자의식을 드러내는 행위에서 오는 부끄러움에 대한 면역력만 늘어나게 된지라 마 이렇게 블로그를 개설해 본 거시엇따.

블로그 노선에 대해서는 이리저리 모색 중이지만, 오프건 온이건 내가 먼저 상대방한테 다가가서 말 걸고 친해지는 그런 넉살은 없는 관계로 구독자를 기대하지 않는 글감과 서술이 주를 이룰 듯 허다.

그럼 진짜루 하지마루요~

1.거짓말쟁이 미 군과 고장난 마짱 코믹스.(嘘つきみーくんと壊れたまーちゃん とっておきの嘘) 이루마 히토마 원작. 사토 아츠노리(佐藤敦紀) 그림.



미마짱 만화판을 보고 맨 처음 감탄한 부분은, 간단한 시선 처리로 소설 속의 무수한 이야기를 축약하여 담아내는 기법이었다. 가령 위 그림에서 히로인(마유)을 대신하여 유괴범이 되기로 결심한 소년은 마유가 납치해온 아이들과 기싸움을 벌인다.

"밥을 지어? 거기에 독이라도 집어넣으려고? 아니면, 바퀴벌레라도 먹일 셈이야?"

"독에, 바퀴벌레라... 그럼 안즈."

"이름으로 부르지 마."

"이케다, 만약 둘 중 하나가 들어 있는 밥이 나오면, 넌 먹을 거니?"

"먹을 리 없잖아?"

"안 먹으면 죽인다고 하면?"

"그런 걸 먹으면, 어쨌거나 결국 죽게 돼."

"아니야, 안 먹으면 네 오빠가 죽게 돼."
쉬이 고르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진 소녀는 겁에 질려 할 말을 잃는다.

얼마간의 침묵. 소녀를 주시하던 소년은 이내 두 눈을 감는다. -유괴범한테 학대 당하는 남매에게 깊은 공감을 느끼는 것처럼, 동정하는 것처럼, 혹은 최악으로 표현되는 자신의 유괴 경험을 반추하는 것처럼-

헌데 원작 기반 컨텐츠란 본래 원작팬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만큼, 일정 부분 미리 원작을 숙지하고 있어야 의미가 보이는 측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원작을 잘 모르는 독자의 눈에는 어떻게 비춰질지 몹시 궁금하다. 과연 유의미한 장면이긴 할런지 궁금하다는....원부심을 폭발시키며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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