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japanese.joins.com/article/978/173978.html?servcode=100§code=140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30843
일본의 세계적인 팝아티스트 무라카미 타카시 씨는 자칭 오타쿠(매니아, 특히 성인만화・애니메이션 등 서브컬쳐의 매니아)다. 「그렇다면 『진격의 거인』 같은 요즘 만화도 보는지」 최근 전시회를 위해 방한한 그에게 질문했다. 사실 『진격의 거인』은 단순히 예로 들었을 뿐인데 그는 열띤 어조로 답했다.
「우울한 만화다. 느닷없이 출현한 거인이 인간을 포식하는데도 어째서 그런 건지 아무도 모른다. 만화 자체는 독특하지만 일본에서 이 만화가 폭발적인 인기를 부른 것도 독특한 현상이다. 결국 이 만화가 일본의 젊은 세대의 현실이란 뜻이다. 인간은 거인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쌓아올린 거대한 벽에 틀어박혀 무기력한 생활을 보낸다. 그 한정된 안전마저 언제 거인이 벽을 넘어 공격해올지 모르는 공포와 공존하고 있다.」
이 말을 듣고있자면 『진격의 거인』이 한국의 젊은 층 사이에서도 인기인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들도 "벽"에 둘러쌓인 사회 "좋은 일자리"가 부족해서 청년실업이 증가하고 계층 상승이 어려워진, 닫힌 세계에 살고 있지 않은가. 거기다 북한의 도발위협, 주변 강대국 (※아이러니하게도 『진격의 거인』이 배출된 일본도 포함된다)과의 정치적 마찰등, 보이지 않는 "벽"이나 "공포의 거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류는 천지창조무렵부터 거인을 말해왔다. 북구의 신화에서는 위미르란 거인의 몸에서 세계가 창조되었고 신들은 거인족과 끊임없이 투쟁한다. 여기서의 거인은 거대한 자연의 놀라운 힘을 상징하고 있다. 이같은 이유에서 『진격의 거인』은 보편적으로 어필할만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 한편에서 다수의 수작만화가 넘쳐나는 일본에서도 독보적인 인기를 불러온 것은 무라카미 씨의 지적대로 "독특한 현상"이다. 그래서 한국의 몇몇 전문가들은 최근 일본 정계의 군국주의부활 움직임이 떠올라 내심 우려하고 있다.
『진격의 거인』에서 주인공 엘렌 예거는 벽 안에 갇힌 무기력한 평화를 "가축의 인생"이라 비난하고 「벽 밖에 나가 싸워야한다」고 외친다. 이것이 현재 일본의 상황과 묘하게 합치한다. 일본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전범국가로서 정식 군대가 없이 미국의 방위 아래서 살아왔다. 그런데 최근 아베베 신조 정권이 헌법개정 후의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삼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여서 주변국의 반발을 샀다.
물론 원작자가 이걸 의도했다는 증거는 없다. 또한 이 만화는 앞서 말했듯 다양한 이유에서 전세계 사람들한테 어필할 수 있다. 그러니 군국주의 만화라고 몰아세우고 배척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일본의 특정집단에 극우적인 인스피레이션을 가져다줄 가능성도 있단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하지는 않을까.
그 같은 면에서 일본 특유의 거대 로봇 만화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먼저 거대 로봇은 보편적으로 어필할만 하다. 인간은 천지창조 때부터 거인을 두려온 것과 동시에 스스로 거인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기 대문이다.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시대에 인간이 가장 멋진 거인이 되는 방법은 거대 로봇에 타서 조종을 하는 것일게다.
일본적인 거대 로봇은 헐리웃에도 수출됐다. 이번주 말에 한국과 북미에서 개봉한 영화 『퍼시픽 림』도 그같은 거대로봇이 거대괴수와 싸우는 영화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와 비교당하곤 하는데 『퍼시픽 림』은 인간 파일럿이 로봇을 조종한다는 점에서 일본의 거대로봇 만화에 훨씬 가깝다. 우연히도 이 거대로봇은 "사냥꾼"을 의미하는 예거(jaeger)로 불린다. 『진격의 거인』 주인공 소년과 똑같은 이름이다.
『퍼시픽 림』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 영화가) 전쟁을 미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걸 피하고자」 일부러 등장인물에 군대식 계급명칭을 붙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거대로봇 영화가 몹시도 군국주의적으로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소리다. 그래서 이제까지의 일본 거대로봇 만화담론이 펼쳐질 때는 군국주의 논쟁이 나오곤 한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는데 『진격의 거인』도 거대로봇도 작품 자체를 일부러 배척할 필요는 없다. 좋은 작품은 한국인도 공유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식으로 수용되는지-최근 우경화한 일본에서 어떤 맥락으로 인기를 얻었는지- 주의깊게 살펴봐야 한다. 일본의 군국주의 최대피해자였던 한국은 언제고 눈을 뜨고 있어야만 하니까.
이 칼럼에 대한 무라카미 타카시의 반응.
일본의 만화 『진격의 거인』 신드롬←이 기사가 내 주변에서 소란이라 난감하다. 우선 누가 이런 제목 붙인 거야? <무라카미 타카시 「우울한 만화다. 이게 바로 일본의 젊은 세대의 현실」> 그리고 나는 진격의 거인에 대해서는 인터뷰를 받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제멋대로 편집되서 황당하다.
사실 『진격의 거인』은 단순히 예로 들었을 뿐인데 그는 열띤 어조로 답했다. ←잠깐만, 나는 내 전시회 인터뷰에 응하긴 했지만 이처럼 과장된 모습으로 문답 하진 않았어.
우울한 만화다←이거, 오역? 과장? 여기부터 이미 이상하잖아!
느닷없이 출현한 거인이 인간을 포식하는데도 어째서 그런 건지 아무도 모른다. 만화 자체는 독특하지만 일본에서 이 만화가 폭발적인 인기를 부른 것도 독특한 현상이다. 결국 이 만화가 일본의 젊은 세대의 현실이란 뜻이다. ←마지막 부분이 오역? 이 인터뷰어한테 나는 영어로 대답한 건가?
아니면 일본어를 한국어로? 이 기사의 이상한 점을 열거하자면
①나는 개인전 인터뷰는 했지만 이런 기사를 위한 전재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입맛대로 골라쓴 편집은 오해를 유발시키고 있어.
②언어의 오역이 적어도 두 번 반복돼서 중앙일보에서의 기사의 일본어가 이미 변형되어 있는 점. ③<그는 열띤 어조로 대답했다> 기자의 인상묘사가 이미지를 유도하고 있어
④<음울한 만화다> 여기도 오역의 반복.
⑤그리고 트위터에서 중앙일보 기사를 소개하는 헤드라인이 완전히 조작이야. <村上隆「憂鬱な漫画だ。これが日本の若い世代の現実」>←오역, 의도된 편집(악의)의 누적으로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변형됐고, 그런 식으로 만들어 무라카미 타카시가 비판하고 있다고 유도하는 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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