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ㄴㅇㄹ

뭔가의 번역물 2013. 3. 8. 16:08



방과후에 헬리콥터가 날아왔다.

두두두두 하고 회전음이 가까와져서, 놀랄만치 가까와져서, 좀처럼 떠나질 않았다. 너무 오래 머리 위에 있기에, 어쩌면 교정에 착륙하는 건 아닐지 하는 생각마저 든 참에야, 겨우 멀어졌다.


고전부 부실, 지학 강의실에는, 네명의 부원이 모여있었다. 나는 책을 읽고 있고, 사토시는 놀랍게도 숙제를 하고 있었다. 치탄다와 이바라는 우리들 자리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서, 방금전부터 무슨 얘기를 주고받으며 웃고 있었다.


그랬던 게, 헬리콥터 소리의 커다람이 어쩐지 훼방을 놓은 꼴이 되었다. 소리가 사그라들자, 미리 짠 듯한 침묵이 찾아왔다. 살짝 기묘한 느낌이다. 그 정적을 타파하고자 생각한 것은 아니나, 나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헬리콥터라"

이제까지 몇번이고 헬리콥터 소리는 들어왔건만, 이 날은 유독 한가지, 떠오른 것이 있었다.


"오기가, 헬리콥터를 좋아했었지"

그것은 사토시한테 건넨 말이자, 이바라한테 건넨 말이었다. 하지만 반응한 것은 치탄다였다.


"오기 씨? 2학년 B반의 오기 타카히로 씨 말씀이신가요?"

"누구야 그게"

"그러니까, 2학년 B반의"

 

고전부 말고는 교내 과외활동에 참가하지 않는 1학년인 내가, 어떻게 2학년 이름을 알겠어. 나는 손 안의 책을 덮었다.


"네가 모르는 오기를 말하는 거야. 중학교 영어 선생이야. 사토시, 그녀석 말야"

그리 말을 걸자, 사토시도 샤프를 책상에 내려 놓았다. 그러나, 영 감이 안 오는 모양인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물론 오기 선생님은 알고 있어. 3학년 때, 담임이었지. 하지만 헬리곱터를 좋아했다니, 그건 몰랐네" 이 말에는 내 쪽이 석연치가 못하다. 갖가지 사건에 대해서, 나보다는 대체로 사토시 쪽이 빠삭한 법인데.


"유명하다고 생각하는데. 오기의 헬리콥터 사랑은"


그리 말하면서, 힐끔 이바라를 본다. 이바라는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나와 사토시, 이바라 셋은 카부라야 중학교에서 이 카미야마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치탄다만 다르다. 하지만 이바라는, 내 시선을 알아차렸으면서도 엉뚱한 쪽을 바라보고 있다. 딱 한마디 "흐응"이라 말했다.


이상하네. 사토시도 이바라도 모르는 건가. 나는 다대한 관심을 갖고 학교 선생을 관찰하거나 하진 않는다. 그 내가 알고 있고, 이녀석들이 모른다는 건 묘한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 이바라하곤 줄곧 같은 반이었다. 모를리가 없다.


"이바라, 기억 안 나? 언제였더라, 학교 위를 헬리콥터가 날아간 적이 있었잖아."

"수십번은, 그랬지"

쌀쌀맞다. 애초에, 살갑게 구는 이바라는 본 적이 없다.


"그 중의 한번이지만 말야. 오기가 갑자기, 수업을 하다말고 창쪽으로 달려가, 하늘을 올려다 본 적이 있었어. 헬리콥터가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걸 줄곧 지켜본다음, '헬리콥터를 좋아하거든'라나 뭐라나 웃으며 둘러대고는, 수업을 재개한 일이 있었잖아."


"그렇게 말하니까, 기억 나네. 있었어, 그런 일이. 그게 오기였던가?"

다행이다, 내 착각이 아니었구나.

그러나, 사토시는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좌우로. 어쩌면 저건, 어깨결림 경감 체조 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 움직임이 갑자기 뚝 멈추고는, 단언했다.


"그건 이상하네"

"이상하다고 말한들,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지만, 자위대 헬리콥터가 스쿼드론을 짜고 날아왔을 때는 상당한 볼거리였는데, 오기 선생님이 반응을 했단 기억이 없거든"

몇 갠가 모르겠는 것이.


"스쿼드론이 뭐야"

"편대"

"어떻게 자위대란 걸 알았어"

"달리 화살촉 모양으로 편대를 짜고 날아가는 헬리콥터 집단에 대해 짐작 가는 게 없었으니까"

그렇구나. 그러면, 의문은 나머지 하나.


"그 자리에 오기가 있었던 건 확실해?"

사토시는 눈썹을 모았다.

"······그랬을 거라, 생각해. 그 헬리콥터를 보고 연상을 해서, 사전으로 <ATM>을 찾아본 기억이 있으니까"


필시 이바라와 치탄다는, 헬리콥터와 현금자동 입출금기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 짐작도 못하겠지. ATM은 대전차 미사일의 약어이기도 하다. 그건 제쳐두고 


"확실히. 그런 게 오면, 오기였다면 운동장에 뛰쳐나가 춤이라도 출 것 같아"

"춤은 추지 않았겠지만"

수사적 표현이다.


이바라도 서서히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한 모양이다.

"응. 헬리콥터 보고 좋아했던 건, 오기 선생님 맞아. 그거, 꽤나 옛날 일이었지. 아마 중학교 입학하고 얼마 안 됐을 때 아니었나"


"듣고보니 중학교엔 이상한 선생이 있구만 하고 생각했던 기분이 들어"

"그치만 후쿠쨩 말처럼, 그뒤로는 오기 선생님이 헬리콥터에 반응한 모습을 본 적이 없어"


3년 전인가. 꽤나 기억이 애매해졌다. 하지만, 말을 듣고나니, 그 한번을 제외하곤 오기가 같은 짓을 했다는 기억이 없다. 사토시도 이런저런 기억이 나기 시작한 모양이다.


"하지만, 오기 선생님 하면, 그런 사사로운 일보다 훨씬 메이저 임팩트한 전설이 있지만 말야. 경이의 오기 전설이"


"멋대로 지어내지 마"

어차피, 호들갑이겠거니 싶었는데, 사토시는 의외로 진지하게 화를 냈다.


"아니야, 내가 지어내는 게 아냐. 본인이 말했던 거야"

뭐, 잡담을 좋아하는 사람이긴 했다. 내가 잠자코 있자, 사토시는 만족한 듯 웃고는, 그리고 이 때다 싶은지 거드름을 피웠다.


"오기 선생님은 말이지······나도 약간 믿겨지지 않지만 말야. 말해도 믿을지 어떨지. 있을 수 없다고는 생각하는데 말야."


"얼른 말해"
"본인의 변에 의하면, 이제껏 생애 세번, 벼락을 맞았다지 뭐야."

 치탄다에게 있어서는, 오기가 헬리콥터를 사랑하든 ATM을 쏘건 간에, 모르는 사람의 추억담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치탄다의 호기심이 한도가 없다고는 해도, 흥미가 갈리도 없다. 지금까진 대화에 끼지 않았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 이야기에는 목소릴 냈다.


"어머. 벼락이라니, 그 벼락말인가요"

인지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키고 있다. 사토시는 끄덕인다.


"응. 썬더."

그런 얘기. 나는 몰랐다. 아무 말 없이 이바라를 본다. 시선의 의미를 이해하고 이바라도 작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바라도 모르는 것 같다. 치탄다는 딱하다는 듯 눈썹을 모은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 일인데.


"세번이나. 용케도 무사하셨네요"

"맞은 것은 세번(산도)이다"


애처로운 발언이다. 못들은 걸로 해주는 게 상냥함이려나. 방금 자기가 한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사토시는 태연히 말을 이었다.


"세번 다 직접 맞은 건 아니라는 모양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상처가 없는 건 아니라지 뭐야. 한번은 기절을 했었다나. 몸에는 화상 흉터가 있다고 말하곤 웃었어"


"그런가요······. 그치만 무사하시니까, 불행중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마음에 걸린다. 벼락. 그것도 세번이나.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카미야마 시는 딱히 벼락이 잦은 토지가 아니다. 그런데, 오기만 세번이나 맞는게 가탕키나 하겠냐고. 사토시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사토시는 이따금 말을 지어내지만 '지어낸 게 아냐'라고 선언까지 해가면서 말을 지어내진 않는다.


그러면, 오기의 거짓말일까? 그것도 이상한 얘기다. 불행 자랑을 하는 녀석은 많지만, '나, 세번이나 벼락을 맞았지 뭐야'라고 하는 건, 뭐랄까 거짓말 치곤 너무 허황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내 뇌리를, 어떤 종류의 예감이 스쳤다. 그리, 유쾌한 예감은 아니었다.


묻는다.

"사토시. 옛날 신문은, 도서관에 있었지?"

느닷없이 화제를 돌리자 살짝 불만인 티는 났지만, 사토시는 알려줬다.

"있어. 조금이라면, 우리 학교 도서관에도"

"아, 도서관에 있는 건 카미야마 고교에 관련된 스크랩 뿐이야."

그러고 보면 이바라는 도서위원이었다. 가끔씩 도서실에 가면, 상당한 빈도로 카운터에 이녀석이 있다.


카미야마 고교와는 관계 없으므로, 스크랩북으론 부족하다. 숄더백을 잡는다.

"집에 갈래. 도서관에 들릴 건데, 너도 올래?"

사토시한테 말하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왠지, 호타로가 의욕이 생긴 것처럼 보이는데"


의욕이랄지. 아마 다르다. 단지 예감이 너무 강렬해서, 뭐라고 해야하나······.

"마음에 걸린다고"


그 한마디를 중얼인 순간, 공기가 변질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명백하게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사토시는 입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바라는 뭐 시큼한 거라도 씹은 표정을 지었다. 손짓 발짓 해가며, 사토시는 허둥거린다.


"호타로? 호타로 맞지? 오레키 호타로가 맞는거지? 우주인한테 납치 당한 거 아니지? 아니면 치탄다 씨랑 바꿔치기 당하기라도 했어?"


"저는, 여기에 있는데요."

"오레키, 너 집에 가는 편이 낫겠다. 곧장 집에 가서, 얼른 자. 몸은 따뜻하게 하고. 내일이 되면, 틀림 없이 다 나을거야."


······내가 자발적인 행동을 하는 게, 그렇게도 이상하냐? 이래뵈도 자발호흡 정돈 하고 있거늘. 도서관이 몇 시까지 열려 있는지는 모르지만, 24시간 영업은 아닐테지. 늦어서 폐관 시간에 가도 달갑지 않다. 이런 무례한 녀석들을 권유하는 건 관두고, 얼른 처리하자.


그리 생각하고 일어선 차에, 동시에 일어선 녀석이 있었다. 치탄다였다.

"오레키 씨, 궁금해하시는 거네요."

"응, 뭐 그렇지."

"조사하러 가시는 건가요?"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런 편이 나아."

"궁금해요!"

뭐, 뭐야 뭐냐고. 지학 강의실의 책상과 의자를 헤집으며, 치탄다는 척척 나한테 다가온다. 1미터 남짓한 거리에서, 겨우 멈추고는, 검은 눈동자가 정면에서 나를 응시한다.


"오레키 씨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하다니, 그게 대체 무엇일지······. 저, 궁금해요!"


아아.

이녀석도 상당히, 무례하구만.


사토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숙제를 끝마치지 않으면 위험했는지, 간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뭐, 딱히 와주길 바란 것도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도서위원인 이바라가 와준다면 듬직하겠지만, 나랑 이바라의 사이에는 부탁한다고 말할만한 의리가 없다.


그래서 결국, 교문 앞에서, 치탄다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때마침, 시각은 하교 시간대 피크. 문과 계열 부활이 활발한 카미야마 고등학교에서, 깃을 세운 남자교복과 세일러복 복장의 학생이 끊임없이 귀가한다. 운동장에는 체육 계열 부가 아직 활동하고 있는데, 대체로 뒷정리 시간인 듯 하다. 허들을 겹쳐서 어깨에 짊어진 육상부 여학생과, 베이스를 뽑아내면서 다이아몬드를 돌고 있는 야구부 남학생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도보로 통학하고 있는데, 치탄다는 자전거다. 그리 오래 기다리는 일 없이, 자전거 보관소가 있는 학교 뒷편에서 치탄다가 왔다. 느긋한 발놀림이었다.


"그럼, 갈까요?"

그런 말을 듣고, 문뜩 생각한다.

지금 카미야마 고교 주변에는, 어느쪽을 향하든 하교하는 학생들 뿐. 나랑 치탄다가 같이 가기에는, 치탄다가 자전거를 내려서 학생 무리 안을 자전거를 끌고 가는 수 밖에 없다. 그 정경을 떠올린다. 그럴수야 없지. 역시.


"먼저 가"

치탄다는 힐끔 나를 보곤

"둘이 타도 괜찮답니다."

라고.


치탄다가 페달을 밟고, 뒤에 내가 타는 정경을 떠올린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럴 수는 없다.


애시당초 생각해보니, 여기서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치탄다가 내 조사를 지켜보고 싶다면, 도서관에서 합류하면 그만이다. 먼저 가있으라고 다시 한번 말하는 대신에, 갈 길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치탄다는, 그럼, 하고 나아갔다.


생각난 김에, 그 뒷모습을 향해 말을 건다.

"아, 치탄다"

"네"


자전거에 올라탄 채로, 어깨너머로 돌아본다.

"도서관에 도착해서, 혹시 과거의 신문기사를 검색할 수 있다면, 오기 마사키요란 이름으로 검색해주지 않겠어. 작은(小) 나무(木)가 올바르고(正) 청아하게(清), 오기 마사키요야."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뒷모습을 배웅하면서 생각한 건데, 치탄다한테 자전거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 아무리 여학생답다고 할지라도 마차나 인력거가 어울린다고까진, 생각하지 않지만.


나도 다시, 하교하는 학생들 무리에 낀다. 너무 천천히 걸어서는, 치탄다를 기다리게 만든다. 달리는 건 아무래도 에너지 절약주의에 위반되지만서도, 뭐, 빨리 걷기 정도라면. 


발치만 보면서, 부산스럽게 걷는다. 시립 도서관은, 내 귀가길에서 그리 멀지 않다. 살짝 들리는 걸로 된다. 강을 따라 이어진, 익숙한 통학로. 비 오는 날은 아케이드가 있는 상점가를 돌아다닌 적도 있지만, 대개는 이 길로 통학한다. 학교 근처에서는 무리를 짓고 있는 카미야마 고교생도, 어떤 이는 집으로, 어떤 이는 학원으로, 또 다른 이런저런 목적지로 삼삼오오 흩어져서, 이윽고 강부근에 카미야마 학생은 나만 남았다.


종종걸음에 약간 지쳐, 늘어진 턱을 똑바로 든다. 뒷편에서 경자동차가 오는 걸 알아차리고 살짝 옆으로 피한다. 문뜩 고개를 들자, 카미코우치 봉우리의 산들이 언제나처럼 솟아있다.


카미야마 시는, 카미코우치 봉우리 발치에 있다. 가끔씩 수학여행 같은 걸로 이 마을을 나가면, 병풍처럼 연결된 바위산이 나를 내려보고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해방감과 불안감을 조금씩 느낀다. 3천 미터급 예봉이 이어진 카미코우치 봉우리는 대기의 흐름마저 차단해서, 봉우리 안쪽과 너머는 기후가 완전 다르다는 듯 하다. 가본 적은 없다. 지리 교과서에 그렇게 쓰여 있었고, 누나가 실제 감각으로도 그렇다고 알려주었다.


일본 뿐이랴 세계 어디든 '잠깐 다녀올게'라고 말하고 떠나는 누나는, 눈앞에 우뚝 솟은 카미코우치 봉우리에도 몇 번인가 올랐었다. 단, 여러 직함을 달고 있는 오레키 토모에지만, 아직까진 등산가라고 말할 정도는 아닌 모양이다. 초심자용이라는 2천 미터 후반의 산을, 몇 갠가 제패한 수준이었지 싶다.


나도 초등학생 무렵엔 끌려간 적이 있다. 등산은 말할 필요도 없이 에너지 절약주의와 대극에 있는거나 다름없는 행동이다. 나는 아마 두번 다시, 산에는 오르는 일이 없을테지. 저녁노을이 지기 전까진 아직 여유가 있다. 치탄다가 기다리고 있는 사실을 잊은 건 아니지만, 나는 한동안 눈에 익었을 터인 산봉우리를 바라봤다.


카미코우치 봉우리에 시선이 간 것은, 어쩌다가 아니다.

도서관에 도착한 나를 발견하고, 발소리를 내지 않는 걸음걸이로 다가온 치탄다가 한장의 복사용지를 건네주었다.


"오기 씨의 정보, 찾았어요"

굳이 일부러 복사해주지 않아도 됐는데. 복사비는 한장 십엔이겠거니 생각하고, 십엔을 내민다. 치탄다는 아무 말 없이 받아들였다. 치탄다가 찾아 준 것은, 작년의 신문기사였다.


등산길 미화활동 카미코우치 봉우리에서

  26일부터, 카미야마 산악회 주최로 아부미타 등산로의 미화가 진행되고 있다. 자원봉사자 등 11명이 참가하여, 등산길 주변의 쓰레기를 주었다. 카미야마 산악회 단장 오기 마사키요 씨(39)는 '등산붐으로 산의 매너를 모르는 등산가가 늘었다. 산에서의 매너 위반은 목숨이 달렸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기 선생님은, 등산을 하시는 분이셨군요"

아마도, 나는 표정을 적잖이 찌푸리고 있었던 걸테지. 치탄다가 얼굴을 들여다 본다.


"저기······.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무것도 아냐. 옛날 신문은, 전부 검색할 수 있었어?"

"5년 전 것은, 아직 못한다는 것 같아요. 저쪽에 있는 카운터에서 조사해주실 수 있대요."


대답하면서, 치탄다는 한층 더 내 태도에 미심쩍어 한다.

세번이나 낙뢰를 맞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언뜻 생각했던 거다. ······평지에서, 그런 일이 가능할 것인지.


가능할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는 몇 십번이나 낙뢰를 맞고 살아있는 인간이 있단 얘길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했고, 그 예상은 들어맞았다.


이 예상의 결말은, 그다지 적중하지 않았음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카운터에 다가간다. 컴퓨터를 다루고 있는 은테 안경을 쓴 젊은 여성한테 "실례합니다. 신문기사를 검색하고 싶은데요."라 알린다.


"네. 무엇을 조사해드릴까요."

"삼년 전의, 4월부터 5월까지의 기사를 부탁드려요."

키보드 타자음이 막힘없이 흘러나온다. 여성 분은, 키보드도 모니터도 아닌, 나를 보면서 타자를 치고 있었다. 이어서 질문을 들었다.


"특별한 키워드는 없으신가요?"

잠시 생각한다.

"······<조난>으로"

영문을 묻지않고,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서, 여성분은 컴퓨터를 조작한다.

이 사람은 사서인 걸까. 이전에는, 도서관에 근무하는 사람은 전부 사서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무언가를 계기로 그 착각을 들켜서, 이바라한테 꽤나 놀림받은 적이 있다. 사서이든, 단순한 알바생이건, 여성분의 일처리는 빨랐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한 직후의 신문기사를, 즉깍 조사해주었다.


"열 두건이 있네요. 더 좁혀드릴까요."

"그정도라면, 전부 보여주세요."


여성분은 모니터를 돌려, 내쪽으로 향하게 했다.

당시의 기사 그 자체가 데이터베이스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검색만 가능하단 모양이다. 표시되는 건, 검색 결과 뿐. 하지만 거기서, 예상한대로의 문자를 발견했다.


───카미코우치 봉우리에서 조난 수색난항───

잠자코 모니터를 보는 내 등뒤에서, 치탄다가 말을 건다.

"······정월 9일의 기사네요. 과거의 신문은 이쪽이에요. 찾아보지요."

그 목소리에, 들뜬 기색은 없었다.

치탄다는 눈치가 없다. 내가 알아차리고, 이바라가 알아차리고, 사토시가 알아차려도, 치탄다 만큼은 멍하니 있는 일이 흔히 있다. 하지만, 지금 이 목소리로, 치탄다도 사정을 헤아렸구나 싶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치탄다를 따라갔다.


날짜를 알고 있으면, 찾고 싶은 기사를 찾는데 큰 수고는 들지 않는다. 그렇긴 한데, 1분도 지나지 않아서 찾아냈다. 5월 9일 금요일, 조간. 카부라야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오기가, 수업중에 헬리콥터를 좋아한다고 표명한 것은, 아마도 이 날이었던 거다.


기사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카미야마 산악회 두명 조난

8일, 타와라다 코우이치 씨(43)와 무라지 이사오 씨(40) 두사람이 하산 예정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다고 카미야마 시 경찰에 신고가 들어왔다. 두사람은 카미야마 산악회 회원으로, 카미코우치 봉우리의 시코로다케를 중심으로 등산을 했다고 짐작된다.


산악구조대가 출동했지만, 시코로다케 부근의 기상 악화 탓에, 수색은 난항 중이다. 현 경찰은 구조 헬리콥터를 카미야마 경찰서로 이동시켜, 날씨가 풀리길 기다려, 하늘에서도 수색을 벌일 예정.


"요컨대······. 무슨 일인 걸까요."

무엇이 일어났는지, 치탄다도 대강은 이해했겠지. 그저, 그걸 말로 표현하고 싶지 않은 거다. 이건 내가, 

떠올리고, 내가 꺼낸 말이기에, 걸맞는 해답을 내리는 건 역시 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컨대, 오기는 헬리콥터 같은 걸 좋아하는 게 아니었어."

결론만 먼저 말한다.


해질녁의 도서관에, 의외로 사람이 많다. 아이를 데려온 어르신, 우리들과 같은 교복을 입은 카미야마 고교 학생도 여기저기, 다른 학교의 교복차림도 보인다. 도서관에서는 정숙. 나는 목소리를 낮춘다.


"오기는 세번이나 벼락을 맞았어. 아마도 사실이겠지. 하지만, 평범하게 이 마을에서 영어교사를 하는 것 만으로, 그렇게나 벼락을 맞을 수 있을까.······그래서, 언뜻 떠올린거야. 오기는 벼락이 떨어지기 쉬운 장소에, 빈번하게 가는 건 아니었을까 하고"


"그것이, 산이었던 거군요. 오레키 씨는 예상하고 계셨나요"


"막연하게지만. 오기는 교사인 동시에 등산가였던 게 아닐까 싶었어. 그랬더니 금세 연상이 떠올라, 딱 한번 헬리콥터를 좋아한다고 말한 그 의미를, 알 것 같았어. 설마 진짜일까 확인하러 온거야."


그리고 지금, 우리들 앞에는 삼년전의 신문기사가 있다. 오기가 소속되어 있던 산악회, 그곳의 회원 조난을 알리는 기사가.


"어째서 그 날만, 오기는 헬리콥터를 지켜보려 했던 걸까. 그 헬리콥터에 특별한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야. 그 날 헬리콥터가 날아가는 걸 간절하게 기다렸던 게 아닐까. 좀 더 확실하게는 헬리콥터가 뜰지 어떨지, 몹시도 걱정을 했어. 그래서 소리를 듣고, 무심코 기체를 확인한 거야."


영어교사가 헬리콥터를 신경 쓰고 있었다는 사실 만으론, 아무것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등산가라면, 그야말로 이유가 있게 된다. 하물며 카미야마 시는 3천 미터급 예봉이 쭉 이어진 카미코우치 봉우리와 인접한 도시.


"헬리콥터가 비행 가능한지 어떤지" "등산가가 마음에 걸렸던 것."으로 바꾸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은 예상이 간다.······등산과 헬리콥터를 관련 지을 수 있는 건, 공중 촬영이나 자료 운반. 그게 아니라면, 구조.


치탄다의 목소리도, 속삭이듯 작다. 여기가 도서관이니까라는 이유만은 아닌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기사에는, 8일은 날씨가 나빠 헬리콥터가 비행할 수 없다고 쓰여 있어요."

"그렇네."

나는 그 다음 말을 잇지 않았다. 치탄다도 알고 있겠지. 쓸데 없는 건 말하지 않는다.


오기가 마음에 두고 있었던 건, 카미야마 시 경찰서에 대기하고 있는 헬리콥터가 비행을 할 수 있을지 하는 것이겠지. 수업 중에, 중학교 1학년한테 ABC부터 영어를 가르치면서, 카미코우치 봉우리 부근의 날씨가 풀릴지 말지를 신경 쓰고 있었다. 봉우리가 개이면 헬리콥터는 비행한다. 개이지 않는다면, 조난자의 생존률도, 바뀐다.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치탄다의 중얼거림에, 다시 한번, 삼년 전의 일을 떠올린다.

창가에 달려간 오기는, 이윽고 헬리콥터의 소리가 멀어지자, 교단으로 돌아왔다. "헬리콥터를 좋아하거든"이라 둘러대면서. 나는 그 순간의 오기 표정을 기억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면 기억의 착각이려나.


"마음이 어떤지는 몰라. 하지만 오기는, 웃고 있었다고 생각해."

우리들 학생 앞에서, 였기 때문에 그랬던 걸까.

신문을 다음 며칠분 것까지 읽어나가자, 조난한 카미야마 산악회의 두사람은 시체로 발견됐다.

찾아낸 것은 현 경찰의 헬리콥터였다는 듯 하다.


도서관을 나서자, 역시나 해가 지고 있었다. 뜻밖의 샛길이었지만 나와 치탄다의 귀가길은 방향이 다르다. 정면 현관을 나선 참에, 그럼 안녕하고 헤어지려하자, 예상 밖의 질문을 받았다.


"저기······"

"응?"


등을 돌리고 있던 것을 돌아본다.

아주 약간, 치탄다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 같았다.


"한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래"

"어째서, 마음에 걸리신 건가요."

그거냐. 나는 무심코 쓴웃음을 짓는다.


"내가 자발적으로 조사하는 게, 그렇게나 기묘해?"

 동조하듯 치탄다도 미소 짓는다.

"네에, 그렇네요. 오레키 씨 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뭐 그렇긴 하지, 평소라면 <안 해도 되는 일이라면, 안 해>니까 말이지"
"아뇨, 그런 의미가 아니라요"
내 불변의 모토를, 단번에 물리쳤다. 신기하다는 것 보단, 어딘지 망설이는 것처럼, 치탄다는 말을 이었다.

"오레키 씨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이래저래 힘을 다해주세요. 저도, 몇 번이고 도움을 받았어요. 하지만 오레키 씨는, 자기 일에는 무관심하지요. 그런데, 어째서 유독 오늘은 자기 의문을 조사했는지.······죄송해요, 저, 아무리 노력해도 궁금해요."

뭔가 잘못된 말을 들은 기분이다. 터무니 없는 착각을 하는 듯한.
단, 그 오해를 풀고자 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이미 해가 저물었다고. 나는 간결하게, 질문에만 답하기로 했다.

"벼락에 대한 말을 듣고, 기분 나쁜 연상이 떠올랐어."
"그리 말씀하셨었지요."
"그 연상이 들어맞는다면, 앞으로는 조심해야만 하잖아. 그래서 조사해야 했던 거야."

이게 1주일의 통조림이 필요한 대조사였다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옛날 신문을 뒤적이는 정도라면, 그리 번거롭지도 않다. 도와주는 사람도 있었고.

아직 치탄다는 잘 와닿지 않는 모양이다.
"조심한다, 인가요?"
"실제로는 그런 일이 있었는데, 오기가 헬리콥터를 좋아했었지라고, 태평하게 말 못해. 그건 무신경한 거야. 그러니 당연히 조심해야지."

별 다른 뜻 없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치탄다는 커다란 눈을 크게 떴다. 깜짝 놀랐다는 느낌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뭐  잘못 말했나 생각하게 된다. 고개를 비틀며, 말을 더한다.

"무신경하달까, 남의 기분도 모르면서 그런 느낌이려나. 아마 두번다시 오기를 만날 일은 없을테니, 남의 기분이고 자시고도 없지만."

"오레키 씨, 그것은, 무척이나······"
치탄다는, 그렇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우물우물 입을 움직이나 싶더니, 묘하게 멍한 표정을 짓는다. 나온 말은 결국, 딱 한마디.

"잘 표현 못하겠어요."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건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뭐, 잘 표현할 수 없다면, 잘 이해할 수도 없는 말이었겠지.

"그러냐, 그럼 이만. 도움이 많이 됐어."
"천만에요. 그럼"

짧은 말을 나눈다. 치탄다의 집은 멀다. 자전거를 타도, 도착한 무렵에는 완전히 밤일테지. 따라온다고 했던 건 치탄다 쪽이지만, 그래도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건 역시 빚을 진거려나.

돌아가는 길에 무심코 올려다본다.
카미코우치 산봉우리는, 이미 완전히 어둠 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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