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irose-project.com/works_hirose/episode6.html
핏치가 끝나고, 정해진 스케줄을 전부 소화한 에리는 충전기간에 들어갔다.
예능활동이란 점에선, 일단 엔드마크를 찍은 것이다. 깨닫고 보니, 얼마 있음 2004년이 다 끝나가고 있다. 오늘도 춥다.
에리로부터는, 이따금씩 문자가 온다. 내용은 근황보고다. 학교 시험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거나, 요즘엔 알바를 시작했다, 따위의 것들. 조금씩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아가는 걸 문장을 봐도 알 수 있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고민했지만, 결국은 쉬게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야 이야기가 마침표를 찍은 후에도, 이야기의 주인공들 인생은 그녀석이 죽기전까지 이어지는 셈이니까, 그리고 에리의 인생도 아직 앞으로 한창 길고 말이다. 아아, 돌고도는 세계에 찾아오는 미래.
그러니까 말이지, 말하자면 이제부터 앞길은 피리오드의 건너편이라 이거야.
EPISODE 6 : 밤하늘 저편
에리와 만나지 못한 뒤로도, 시간은 변함없이 바쁘게 지나간다.
다른 아이를 돌보고, 자료를 만들어 영업을 뛰고, 약속장소에서 만나, 오디션에 따라 가고, 촬영이나 녹음 현장에 간다. 영업처에서는 고개를 조아리고, 구두 밑창을 거덜내고, 오디션 현장에서는 분위기를 띄우고, 현장에서는 밝게 행동하며, 그리고 K月에 마시러 가서, 알바생인 뮤지션 지망생 U타한테 설교를 하고, 단골손님이나 마스터와 잡담을 즐기며, 숨은 메뉴를 먹고, 이따금씩 바다에 가야만 한다.
여지껏, 매일같이 만나거나 연락을 주고받은 상대와, 갑자기 만날 수 없게 되는 건은 이상한 일인데, 그럼에도 차츰 익숙해졌다. 어느 책에 의하면 인간이란, 어지간한 일에는 적응한다는 모양이다.
오늘도 춥다. 늘 그랬듯 K月에서 한잔 걸친 후에, 한밤 중, 사무소에서 우편물을 체크하고 있으려니 에리한테 보낸 팬레터가 있었다. 이걸로 몇통째려나? 에리한테 전하고자 사무소 어드레스로 보낸 메일도 포함하면 제법 수가 된다. 한사람 한사람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싶을 만치 고맙다. 에리, 너는 여유가 하나도 없어서 몰랐겠지만, 분명히 네 노래나 연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다고.
아무튼, 편지나 메일은 내일 모아서 전해주도록 하자. 요즘은 에리도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았으니까 말이지, 읽어도 괜찮을 거야. 그나저나 정말로 춥구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냉장고에서 두캔째 시원하게 해놓은 맥주를 꺼내 마셔대니까 답이 없다. 꿀꺽 꿀꺽 꿀꺽…오늘도 겨우 하루가 끝난다.
● ●
「그랬구나, 에리쨩 그만두는구나. 아까운 일이네.」
「멍청아! 관둔게 아냐! 충전기간이라고!!」
그리고 이이다바시에 있는 카도가와 영화. 8층의 응접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노닥거리고 있는 나와 사토시.
「오, 과연 전망이 좋구만」
「그야, 8층이니까요. 그치만 앞으로 에리쨩 어쩔거에요?」
「굉장한데, 위에서 보니 사람이 마치 쓰레기처럼…」
「말이 좋아 충전이지, 이제 돌아오지 못하잖아요? 차라리, 이대로 평범한 여고생으로 돌아간 편이 나을지도 몰라요. 돌아온단들 본인에게 괴로운 상황일테고」
「야 임마, 사~토~시~」
양손을 뻗고서, 태양과 커다란 창을 뒤로 하고 돌아본다.
「그런 어른이나 할법한 시시한 말은 하지말라고」
내 좌우명을 알려주도록 하지.『재미없는 세상을 재미있게…』
과연, 내가 죽으면 누군가가 계속해서 읊어주려나?
「……야스 씨」
반쯤 질린 표정으로 사토시가 말한다.
「뭐야?」
「우리들은 이미 어엿한 어른이라구요」
「…할말은 그뿐이냐?」
적어도『어엿함』이 없는 거만큼은 자신이 있다고.
「이제그만 받아들이세요~」
그건 아마 죽을때까지 무리. 그런 식으로 세상과 타협하는 처세술만 해서는, 죽을 때 후회하게 된다고? 그리고 말이다, 사토시. 넌 반쯤 질려하고 있지만, 나머지 반은 부러운 듯한 표정이잖아? 내기해도 좋다. 그쪽의 반쪽은, 내가 고등학생 무렵부터 알고 있는 네 진짜 얼굴이라고.
「아, 맞다. 여기서 도보 15분 정도 걸리는 곳에 맛있는 라멘가게가 있다고. 미소라멘 밖에 없고, 점심시간에만 영업하지만, 니글니글 농후한 스프에 끝내주게 맛있다고. 갈래?」
「라멘입니까…야스 씨, 당신 정말로 에리쨩을 걱정하긴 하는 건가요?」
아마도. 그래도 일단 지금은 배가 고프니까, 라멘을 먹을래.
● ●
사토시의 근무처에서 얻어온 화집이니 만화와 함께, 팬이 보낸 편지나 메일을 프린트 한 걸 에리집에 부치고 올해의 일은 종료. 적당한 시간이었기에, 그대로 마시러 가기로 했다. 언제나의K月는 연말연시로 휴업 중이다. 별수 없으니 이제껏 들아가본 일 없는 가게에서, 잔뜩 마시고 거하게 취한다. 가게를 나와 흐느적 흐느적 갈지자 걸음으로 걷고 있으려니, 문뜩 볼에 차가운 게 닿은 걸 느꼈다.
눈이다.
「어쩐지 이상하게 춥더니만, 이렇군…」
혼잣말을 해본다. 밤하늘에서 팔랑팔랑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다. 아무도 없는 밤거리에 지퍼 라이터의 뚜껑을 여는 딸깍 하는 소리가 더없이 투명하게 울렸다. 밤하늘을 향해 크게 연기를 토해내었을 때, 주머니 속에서 휴대전화가 진동을 울리고 있는 걸 깨닫는다. 착신의 표시를 보자 에리다. 핏치의 마지막날 이래, 문자로 연락은 있었지만, 전화가 걸려온 것은 처음이었다.
「여보세요」
『あ、あの…에리예요』
「오오, 오랫만이네. 저녁쯤에, 너네집 우편함에 전달할 물건을 넣어뒀어. 확인은 했니?」
『네』
「예의 사토시한테서 얻은 화집이랑 만화, 그리고 팬이 보내준 편지랑 메일이야」
『네. 방금 집에 와서, 그리고…팬들이 보내준…편지나…메일을…읽고서…그리고…』
「그래」
『나…응원해주는 사람이나…많은 사람들을…배신하고, 도망쳤는데…정말로, 최악의 인간인데 …어째서…이렇게나…힘내라느니…힘내지 않아도 괜찮다느니, 어째서, 이렇게…상냥한…』
뜨문 뜨문,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조그만 목소리는, 거기서 결국 말이 끊기고 말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한 곽을 꺼내어, 새담배를 하나 입에 문다. 밤하늘에서는 올해 마지막 눈이 나직하게 흩날리고 있다. 내가 사는 익숙한 마을에 나직하게 눈이 내린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목소리를 죽이고서 에리고 울고 있었다.
● ●
약속은 시부야의 커피숍에서 15시. 2005년, 첫 미팅이다.
만나기로 한 상대는 신인 성우. 이미 심야 시간대 애니메이션에선 주역을 맡고 있는, 올해는 더욱 비약이 기대되는 사람. 외견은 산뜻한 미남이지만, 홈페이지를 보건대 상당한 오타쿠인 듯 하다.
「아, 공식 사이트에서 봤어요. 로봇을 좋아하신다면서요.」
「이거 참 부끄럽네요. 실은…」
이 사람과는 작년, 몇번인가 현장에서 얼굴을 마주쳤지만,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는 건 처음이다. 대수롭지 않은 화제에서 시작해, 점점 본론으로 옮겨져 간다.
「그래서, 키타무라 씨 말인데요」
「네」
「저는 몇명인가 동료들과 같이 유닛이랄지,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말은 이렇게 해도 아직 오리지널 곡을 만들어 스튜디오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 단계고, 구체적인 라이브 예정 같은 건 미정이에요. 멤버는 다들 다른 사무소에 소속되어 있고, 평소에는 프로로 성우활동을 하고 있죠. 그러니까 이건 작업이라기 보단, 취미적 활동이에요. 장래에는 오리지널로 드라마cd만들면 좋겠는데~ 이런 소릴 하고 있지만요」
「네」
「모쪼록, 키타무라 씨가 멤버에 들어왔으면 합니다.」
「고마운 얘기라고 생각해요. 그치만…」
거기서 말을 끊고, 아이스 티를 빨대를 쓰지 않고 단번에 마신다. 좋아 간다!
「에리는 이런저런 사정이 생겨서 예능활동을 쉬고 있어요. 쉬기 전에는 정신적으로 불안정 해서, 고정 프로그램을 중도하차 당하기도 했어요. 많은 관계자 분들께도 민폐를 끼쳤습니다. 그런 그녀가 다시 활동을 하고자 하면, 갖가지 문제도 있을테고, 어쩌면 당신이 곤란해질지도 몰라요.」
「네」
「그러니까…」
「그래도 부탁드립니다.」
「네?」
「히로세 씨의 에세이도 읽었고, 약간이지만 사정도 들었어요. 그래도 저는 키타무라 씨가 멤버로 들어왔으면 하는 거에요.」
「그녀석은 말이죠, 성가시다구요~ 그리고, 학교는 쉴수 없고, 알바도 하고 있으니까 스케쥴 잡기도 힘들고, 제멋대로에 바보같은 꼬맹이에, 오타쿠고…」
「그래도 상관없어요. 부탁드려요!」
그가 올곧은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그 올곧음이 기뻤다.
「…에리랑은 말이죠」
그래서 고백하기로 했다.
「네」
「어제 얘기했어요. 그녀석은 자기가 저지른 일을 이해하고 있어요. 알고 있으니까 스스로를 계속 자책하고 있죠. 녹음을 펑크내고 방송을 하차당한 날부터 줄곧입니다. 성우나 가수는 그녀석의 꿈이었습니다. 그걸 이런 모양새로 끝내버려도 될리가 없죠. 이대로는, 그녀석은 평생 이 일을 끌어안고서 후회하면서 살아야 돼요. 일반적으로 생각해서, 일반적인 사무소였다면, 이대로 은퇴를 시키겠지요. 어른의 사정을 생각할 필요도 없이, 문제를 일으킨 탤런트는 사무소도 관여하지 않는게 이득입니다.」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선 사무소는 구해도 에리는 구하지 못해요. 어릴적부터 내 등만 쫓아온 소녀 하나 못구해서야, 나도 사무소도 끝이죠. 가정사정이나 학교사정, 확실히 마이너스 요소는 있습니다만, 그녀석의 노래나 연기에 대한 재능은, 그것과 견주어도 남을만큼 센스 덩어리예요. 알고 계신가요? 그녀석은 여태까지 가수로도 성우로도 레슨 하나 받은 적이 없다구요?」
떠올린 것은, 처음으로 성우 일이 정해졌을 당시의 미소다.
「이제껏 같이 연기한 성우분들에게서 메일이 왔단 모양이에요. 팬들로부터도 잔뜩 편지나 메일이 왔죠. 라스트 엑자일이나 핏치, 한밤중에 여태까지 자기가 나온 작품을 몇번이고 몇번이고 반복해서 본다는 모양이에요. 그녀석은 스스로 그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내색은 안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진심으로 다시 한번 시작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우선은『일』로써가 아니라, 그녀석이 즐겁게 노래하는 장소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래서, 말입니다. 당신한테 무리인 걸 알면서 부탁하고 싶어요. 버거울지도 모르고, 부담을 지우게 될지도 몰라요. 그러나 그럼에도 부탁합니다. 에리를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재활이라고 말하면 실례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나도 모르는 새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고개를 들자 올곧은 눈이 나를 보고 있었다.
「키타무라 씨를 책임지고 맡도록 할게요. 물론 스케쥴이나 앞으로의 예정 같은 건, 확실히 히로세 씨를 통해 알리겠어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단순한 말인데, 그 올곧고 상냥한 눈을 보고 있자니, 이제 에리는 문제 없을 거란 기분이 들었다.
「고마워」
그렇게 말하고,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인다.
일단 마침표를 찍은 이야기였지만, 느닷없이 다음주부터 파트2 연재가 정해진 느낌이려나? 아니면 클리어한 게임의 엔딩을 본다음 톱화면으로 돌아갔더니, 지금까지 없었던 선택기가 나온 느낌이려나? 어느쪽이건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메인 캐스트도 늘어날 것 같고 말이야. 그나저나 앞을 읽을 수 없어서 따분하지 않은 인생이야. 물론 익숙해지는 일 따윈 있을리가 없다.
● ●
일월 모일.
나는 하루나 댁에서 어머님이 직접 만든 햄버그를 먹고 있다.
「히로세 씨, 한그릇 더 드려요?」
「아, 조금만 더 부탁드려요」
하루나 댁의 밥은 맛있다. 나는 더없이 행복한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여전히, 맛나게 드시네요.」
하루나가 숙제를 마치고, 방에서 나왔다.
「하루는 밥 어쩔래?」
어머니가 묻자 하루나가 답한다.
「으~음. 가볍게 해줘. 아, 맞다 히로세 씨. 있잖아…」
찻잔을 받으면서 하루나가 가볍게 말한다.
「4월이 되서 고등학교 입학하면, 어쩌면 일을 그만둘지도 몰라.」
「뭐, 뭐야?」
찻잔을 쥔채로 굳어버린, 이 때의 나는, 실로 얼빠진 표정이었을거라 생각한다.
「중학교 때는 일이 바빠서 부활동 못했잖아? 그래서 고등학교에선 부활동을 해보고 싶어서. 하고자 마음 먹은게 운동계열이니까, 일이 있다고 해서 쉴 수 있을 거 같지가 않아. 틀림없이 선배들도 화낼 거고.」
그런 중요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내일의 날씨라도 말하듯이, 너 말야…
「아, 그치만 아직 고민중. 러브베리는 즐거우니까, 계속할까, 말까 이러고 있어. 그러니까 수험이 끝나면 결론을 낼게.」
4월이 되면 그녀는…그런 제목의 희곡이 있었지. 아니아니,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냐. 젠장, 내일은 또 바다에 갈 수 밖에 없는건가? 겨울바다가 나를 부르고 있다.
「히로세 씨, 한그릇 더 드실래요?」
따분하지 않은 인생에도 정도가 있지. 눈 앞에서 행복한 듯 햄버그를 먹고 있는 꼬맹이는, 아마 아무 생각도 없겠지. 내 발치에서 놀아주길 원하는듯 하루나의 남동생・탓쿤 3세가, 해맑은 눈망으로 나를 올려다 보고 있다.
알았다 알았어. 있다가 기관차 토마스 놀이 해줄테니까, 그치만 지금, 이 순간은 내 머릿속이 새하얗다고. 탓쿤 어른은 힘들단다.
「깜짝 놀랐어?」
아마,도. 하지만 일단 지금은 배가 고프니까, 한그릇 더 먹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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