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처음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 날, 나는 여느 때의 역에서 전차를 타고서, 여느 때처럼 전차에 흔들리며, 여느 때의 역에서 내려 학교를 갔고, 그리고 여느 때의 시간에 학교에 도착해 수업을 받았을 터였다.
하지만, 전차 안에서 문뜩 생각했다.
나는 다음 역에서 내려야만 해. 왜냐면 정기권의 범위가 거기까지니까. 집부터 저기까지가 오늘의 내 세계의 전부니까. 시야의 모퉁이 대각선 위에 붙어있는 노선도가 눈에 들어온다. 아아, 이대로 이 전차를 타고 있으면 종점은 바다구나. 아니, 그, 뭐라고 말해야 할까・・
문뜩 생각하고 만 것이다.
EPISODE 3 ・ SUMMERTIME BLUES
「어디보자, 핏치 이벤트랑 아틀라스 이벤트의 레포트 말인데요・・」
「뭐, 그려서 업로드할 거면 되도록 빠른 편이 낫겠지. 그치만 학교도 있고 무리는 하지 않는 선에서 그려.」
「・・에이에이, 되도록 빨리. 그래서, 이번 4컷 만화의 소재 말인데요, 역시 소재는・・」※ 상기 홈페이지에서 월간 키타무라 에리란 만화를 연재했었다.(http://www.hirose-project.com/kako/erino_heya_title.html)
도내 모 커피숍에서 에리와 HP의 원고 미팅. 늘상 있는 일이지만, 탤런트와 매니저가 아니라, 만화가와 편집자 같은 우리들이었다.
「그런데 에리, 이번주 선데이는 읽었니?『제멋대로 카이조』마지막화」
「아니, 저는 단행본파라서 아직요」
「갖고 있는데 볼래?」
「아유~ 센스 있으시네요. 역시 대단하셔~」
에리카 헤실헤실 웃으며 소년 선데이를 받고 페이지를 넘긴다.
5분후
「・・・・싫어」
「야, 에리」
「・・이런 거 싫어」
「왜 그래・・」
「이런 최종화 인정 못해. 이런 거 카이조 월드가 아냐. 아니 말이죠, 이야기로는 나쁘지 않을지도 몰라요. 괜찮을지도 몰라요. 다른 작품의 최종화로는, 이 소재 괜찮겠죠. 그치만 말이죠, 제멋대로 카이조의 최종화로 이걸 해선 안 돼. 싫어. 인정 못해.」
아니, 여기서 네가 딱지를 놓아도, 쿠메타 선생님이란들・・
「저말이다, 에리・・」
「버릴래」
「어?」
「단행본 전부 버릴거야. 신간도 안 사.」
「야, 야・・」
「이게 아냣ーーーーーっっっ!!!!!」
굉장한 기세로 에리가 소년 선데이로 테이블을 친다. 그 순간 세자리 떨어진 테이블에서 프라페를 마시고 있던 아주머니의 엉덩이가, 3cm정도 떠올랐던 것을 나는 똑똑히 봤다.
「카이조도 우미도, 트라우마 마을에서 영원한 17세를 계속 연기해야 했어요. 마지막까지 계속 연기하면서 끝났어야 했다구요. 제멋대로 카이조의 최종화는, 그런, 그러한・・」
「에, 에리・・침착해, 응?」
「그 선데이 덮어요. 얼른 덮어주세요! 보고 있으면 우울해 진다고요!!」
・・・・뭐랄까 에리가 엄청난 상태가 됐네. 도망치고 싶어졌어.
「・・・・에헤헤, 그런 정신병원 엔딩은 말이죠,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무렵에 대학 노트에 그리다 팽개친 만화가 그런 거였는데, 그 무렵의 저는 이런저런 일로 살짝 우울했던 시기였으니까요, 모르셨죠? 그 무렵엔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이 어느샌가 아침이 되곤 했던 게, 자주 있었지・・」
그런 거 몰라. 그 무렵의 너는 활기찬 어린이 캐릭터였었잖아?
「뭐, 히로세 씨 앞에서는 밝게 행동 했으니까요.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일터까지 끌고가고 싶지 않았으니까, 왜요 이래뵈도 일단 프로니까요. 그런식으로 어떤 분께도 교육 받기도 했고 말이죠. 그런데 떠올리게 되네요, 내가 그리던 만화에선 주인공은 뛰어내려 죽어버리지만 말이죠・・」
에리가 공허한 눈으로 말을 잇는다. 이젠 도망치고 싶다. 정신 차리고 보니, 내 오른손은 어느 틈엔가 가방을 끌어안고 있었다.
「아침까지 그림을 그리고, 초등학교에 가고, 드라마 촬영현장에 가고, 현장에선 히로세 씨가 잘난듯 설교를 해와선, 인생을 논하는 거에요『잘들어, 에리. 인생이란 말이지・・』전 거기에 밝게 대응하고・・」
「키타무라 에리 씨, 캐릭터 변했어요. 얼른 키타에리로 돌아와 주세요.」
「에헤, 에헤헤헤헤・・・・」
에리가 이제껏 본적 없는 얼굴로 웃는다. 무서워.
그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히로세 군!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에리, 선데이는 벌써 치웠으니까. 괜찮으니까. 아! 배고프지 않니? 뭐 먹을까?」
「그러니까・・카이조랑, 우미는 말이죠, 줄곧 트라우마 마을에서・・에헤헤」
키타에리가 바라는 영원.
● ●
정신을 차려보니, 언제나의 역은 진작에 지나 있었다.
창 밖을 흘러가는 본적 없는 경치가 기대 이상으로 보기 좋다. 지금쯤 1교시 수업이 시작했고, 다들 교과사를 펼치고, 일본사 같은 걸 배우고 있겠지. 내일 선생님한테 혼날 거란 것도, 누구보다 난처한 게 나 자신이란 것도, 잘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도, 큰 소리로 외치고 싶은 상쾌함이 나를 감싼다. 전차는 몇 되지 않는 승객을 싣고서, 완곡한 커브를 돌았고, 그리고 노선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 ●
「저기 히로세 씨・・」
에리가 신묘한 표정으로 서있다. 다행이야. 오늘은 망가지지 않았네.
여기는 도내 모 스튜디오. 오늘은 레귤러 배역을 맡고 있는 애니메이션 프로그램「머메이드 멜로디 피치피치 핏치 퓨어』녹음이 있는 날이다. 어쨌든 원래대로 돌아온 것 같다. 그날은 망가져버린 에리가 무서워서, 냉큼 헤어져 영업활동으로 도망친 나였던 것이다.
「이거 말인데요・・」
손에 들고 있는 건 애니메디아의 부록『인기성우 DATA FILE』페이지를 넘겨 테라카도 히토미 항목을 내민다. 핏치에서 함께 연기하고 있는 히토미 쨩은, 천진난만하고 큐트한 러브리 걸이다.
「이『자기 자신을 한마디로 표현』말인데요・・」
내 기억에 에리는『인도어 파』라고 답한 질문이다. 본다. 히토미 쨩의 대답・『하마치・・?』
「하마치예요. 심지어 자기가 대답해놓고 물음표라구요. 무슨 의밀까요?」
「나한테 물어서 어쩌려고. 본인한테 직접 물어봐.」
「아니, 왠지 묻어보기 망설여져서・・」
에리는 히토미 쨩을 정말 좋아해서, 히토미 쨩 관찰이 취미라고 해도 좋을 정도인데, 좀처럼 본인하곤 친해지지 못하는 샤이 샤이 걸인 것이다. 손이 가는 녀석이야. 마침, 타이밍 좋게 히토미 쨩이 눈 앞을 통과한다.
「아, 히토미 쨩. 있잖아・・」
「아앗! 안돼 안돼」
「이 대답에 적힌『하마치』가 무슨 의미야?」
「아, 그건 말이죠~」
히토미 쨩이 느긋한 어조로 대답한다.
「제가요오, 학교에서 하마치라고 불리거든요오」
「?」
무심코 옆에 있는 에리 얼굴을 본다. 거기에는 ?라 적혀 있었다. 다행이야. 나만 그런게 아니었어.
「그, 그래서, 그게 무슨?」
「그게에, 뭐랄까아, 그 아이들 말이, 제가 여우 같대요. 그리고오, 키도 작으니까아, 내숭 많고 조그마해서, 하마치?」
「・・・・・・」
・・히토미 쨩, 혹시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 당하거나 하지 않아?
「아하하하・・」
마땅한 리액션 할게 없어, 메마른 웃음 소리를 내는 나와 에리 옆을 히토미 쨩이 가로질러 간다.
「이봐, 에리」
「뭔가요?」
「히토미 쨩 굉장하지」
「응. 난 평생 이기지 못할 거야.」
이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어때?」
가볍게 화제를 바꿔 본다.
「그러니까, 변함없이 빈털털이라, 어제는 북오프에 만화 팔러 갔다왔어요.」
뭘 팔았는지는 묻지 않도록 하자.
● ●
눈 앞 자리에 신사복 차림의 남성이 앉아있다.
요 근래, 연일 기온은 관측사상 기록 갱신의 온퍼레이드다. 이런 날 상의를 제대로 입고 있는 것만 해도 대단하네, 넥타이도 꽉 매고 있고. 대단하네.
마음속으로 말을 걸어본다.
이것참~ 더운데도 매일 수고하시네요. 저 말이죠 들어보세요, 저는 매일 어린애 보살피면서 밥먹고 살아요. 건방지고 시끄러운 애들이 많아서 정말 큰일이라구요. 오늘은, 덥고, 피곤해서, 아직 이르지만 일을 그만두기로 했어요. 지금부터 바다 갑니다. 에헤헤.
・・바본가 나는.
● ●
카츠 세이지 씨는 끝내주는 중년 록큰롤러로, 전 어린이 밴드 베이시스트에, 에리의 레코딩 디렉터기도 하다. 그런 카츠 씨가 신주쿠에서 우크렐레 라이브를 연다고 한다. 이건 꼭 가야만 해. 요 며칠 덥고, 일도 많았고, 라이브를 보고, 벌컥벌컥 술을 마시고, 즐겨야
「하는데・・」
「뭔가요?」
「왜 네가 여기 있어?」
내 눈앞에 에리가 있다. 가게 특제 바지락 스프 스파게티를 먹고 있다.
「어제는 종업식이었거든요.」
「그래서?」
「오늘부터 여름방학이에요.」
「그래서?」
「카츠 씨가 라이브 하는거면, 저도 보고 싶은 걸요. 거기다 보호자 동반이니까 밤놀이도 오케이~♪」
마스터, 들어보세요. 나는 매일 이런 시끄럽고 건방진 꼬맹이 상대를 하고 있답니다.
「・・맥주 한잔 더」
「또 마시냣」
에리의 딴지는 무시한다. 라이브가 시작한다.
우크렐레 라이브니까 하와이안이려나 생각했더만『새틱스팩션』같은 걸 연주하고 있다. 과연 펑키 베이시스트 카츠 씨. 심지어 연주하면서 맥주를 들이킨다.
「마시면서 연주하냣」
에리가 스테이지를 향해 딴지. 시끄러운 꼬맹이야.
곡이 촉촉한 것으로 바뀐다.『해변의 노래』다.
「이거 말야・・」
「뭔가요?」
「아니, 좋아하는 노래거든.」
「흐응」
별다른 흥미도 없다는 듯 에리가 대답한다.
「그건 그렇다치고 히로세 씨.」
「뭔데?」
「오늘은 취해서 설교하거나, 포부를 말하지 말아주세요. 저 안 들을거니까요.」
건방진 꼬맹이다.
● ●
어제, 내가 좋아하던 각본가가 죽었다. 자살이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안 된다. 죽어선 안 된다. 도망치면 안 된다.
눈 앞의 바다를 보고 있노라니『해변의 노래』가 떠오른다.
그가 각본을 쓴 영화의 한장면에 이 노래가 쓰였다. 주인공 일행은 팔리지 않는 밴드로, 떠돌며 순회공연을 하고 있는데, 어느 시골 역에서 전차를 기다리면서 이 곡을 연주한다. 듣고 있는 것은 승무원 청년 하나뿐인 장면. 좋단 말이지, 그 영화.
고등학교 2학년인 그 때부터, 가끔씩 이렇게 바다를 보러 온다.
마지막으로 온 것은 자력으로 사무소를 시작하자고 결심한 때였다. 혼자서 제로에서 시작할 작정이었는데, 몇명인가 나를 따라와 줬다. 앞일 같은 건 전혀 알 수 없는데, 어쩜 바보같은 녀석들인가 싶었다. 하지만, 앞으로 무슨 소릴 들어도, 미움 받아도, 무슨 일이 있어도 이녀석들 만큼은 지켜주고자 마음 먹었다.
에리는 그 몇명 중에서도 가장 오래 알고 지낸 사이. 처음 만났던 건 일곱살 때로, 연기와 노래가 좋아서 장래의 꿈은 성우나 가수였다. 당시부터 센스는 발군이었다.
「열씸히 날 따라오면 그 꿈 이루어줄게」허황된 내 말을 진심으로 믿고서, 실로 십년이나 있는힘껏 따라와, 마침내 정말 성우도 가수도 되어 버렸다. 놀랄 일이다. 정말로 돼 버렸어.
어릴 때부터 일에 임하는 태도랑 프로 의식에는, 매번 감탄하게 된다. 하지만 대화하다 보면, 사고방식이나 말 도처에 내 잘난척 떠벌린 설교의 영향이 진하게 드러나서, 상당히 부끄럽다. 한층 더 창피한 얘긴데, 건방지고 시끄러운 꼬맹이에, 반항기에, 고생만 시키는 천덕꾸러기지만, 최소한 함께 있는 동안은 정성껏 돌봐주고 싶다.
그 날
그대로 학교에 갔다면, 지금 이런 인생을 걷지 않았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애용하는 라이터로 담배불을 붙인다.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을 타고 연기가 흘러간다.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여왔다.
도망치면 안 돼.
응. 알고있어.
'뭔가의 번역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히로세 야스타카 일기5 (3) | 2013.01.03 |
---|---|
히로세 야스타카 일기4 (2) | 2012.12.30 |
히로세 야스타카 일기2 (0) | 2012.12.27 |
히로세 야스타카 일기1 (1) | 2012.12.27 |
메구 락(meg rock) 공개 강연회 요약 (0) | 2012.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