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irose-project.com/works_hirose/episode11.html


『여, 열심히 살고있냐.』

수화기 맞은 편에서 그리운 목소리.

내가 아직 이 세계에 갓 들어왔을 무렵, 매일같이 들었던 목소리. 꾸지름을 들었던 목소리.


『뭐 너니까. 변함없이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겠지만.』

선배도 변한게 없잖아요. 빡쎄게 일하고 있단 소문은 듣고 있습니다.

저도 말이죠, 선배한테 매일 혼나던 그 무렵같은 애송이는 아니라고요?


선배랑 함께 매니져로 일하던 거대 연예 프로덕션은, 선배가 그만두고 1년후에 저도 관뒀습니다. 그러고나서 몇 갠가의 사무소를 도우며,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것들이 연마되어, 지금은 나름대로 폼을 내며 자기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 변함없는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 만으로, 나는 무심코

눈물이 날 것 같은 걸까요



        EPISODE 11 : 나는 나대로 꿈을 꾼다.


『잘 들어 하루나. 내일 있을 오디션은 보청기CM이야.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고성능 보청기를 끼고서 보내는 쾌적한 생활을 손녀 시점에서 그리는 거야.』


『응』

수화기 맞은편에서는, 언제나와 다름없이 의욕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목소리.


『지금부터 콘티를 FAX로 보낼테니까, 그걸 보고 헤어스타일이나 복장은 스스로 상상해서 만들어야해.』


『응』

『이해했지? 포인트는 호감도니까 말이지. 이상적인 손녀니까 말야.』

『응. 알았어.』

이 시점에서 불안은 있었다.

다음날, 만나기로 한 터미널 역에 나타난 하루나를 보고 맥이 빠졌다.


「너, 너말이다…」

「응?」

아하하, 하루나는 근사한 갈색 머리라 이거야. 어째선지 지금까지 봤던 것 중 제일 밝게 염색을 했지 뭐야. 심지어 노란 브릿지까지 하시고. 틀림없이 스폰서가 바라는 CM호감도는 제로다.


「그 머리 말야…」

「저번 달에, 검게 염색했는데 점점 탈색되지 뭐예요.」

「노, 노란 브릿지까지 했는데…」

「어, 해버렸어.」

 글렀다.

                    

●                       ●


 K月의 카운터가 나를 치유해준다.


「어서오세요.」

마스터가 언제나의 미소로 반겨준다.


「아, 그럼 칭타오 부탁해요. 그리고…」

「오늘은 말고기 육회가 괜찮아요. 로스랑 코후네랑 후타에고, 그리고 혀랑 심장.」

「그거 전부 말고기?」

「본 적 없으시죠? 그것도 냉동이 아니라 생이니까 맛있어요. 조금씩 담아볼까요?」

「응」


알바생인 유우키가 맥주를 가지고 온다. 칭타오는 뒷맛이 깔끔해서 맛있다. 참고로 메뉴에 실려있진 않지만, 내가 억지를 부려 구비시켜 놓고 있다. 이런 억지가 통하는 가게가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 살기 좋은 정도는 크게 바뀐다.


「야 유우키. 너 하코네 소바 먹냐?」

「뭐 이따금식 먹슴다.」

하코바 소바란 오다큐선에 폭넓게 분포되어 있는 서서먹는 소바가게다.


「하코네 소바에는『箱根そば』랑『箱根そば本陣』랑『生そば箱根』이 있다는 걸 알고있냐?」

「모르는뎁쇼」


「본진은 신주쿠 역에서만. 하지만 여긴 약간 비싸고 그다지 맛도 별로야. 남은 것 중 거의 대부분이『箱根そば』나『生そば箱根』거든. 무슨 이유에선지 혼아츠기에는 맥주도 놓여있는『箱根茶屋』란 게 있지만 말야.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맛을 비교해가며 먹어봐.『生そば箱根』쪽이 훨씬 맛있으니까.」

「정말임까?」

「진짜 진짜. 이 부근이라면 요미우리 랜드 역앞에 있는『生そば箱根』가 추천이야. 면을 갓 삶은 타이밍에 맞추면 최고. 맛이 완전 다르다니깐.」

「알겠어요. 노력해볼게요.」

시시한 이야기를 하면서 술이라도 마시면, 조금쯤은 내일도 힘을 내자는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들지 않더라도 억지로 그렇게 마음 먹고자 한다. 그리 생각하지 않으면 해나갈 수 없다. 내가 몸에 익힌 생활의 지혜인 셈이지.


마시고 있으려니 메일이 왔다.

내용은 라이브 공지. 발신자는 옛날부터 알고 있는 소녀.

초등학생 무렵에 일로 보살피던 아이다. 언제나 진지하고 최선을 다해서, 내가 그 사무소에서 일하지 않게 된 후에도 가끔씩 편지를 보내왔다. 그 후 그녀는 초・중학생 퍼포먼스 그룹의 일원으로 데뷔하게 됐는데, TBS의 정오 드라마 주제곡 등을 불렀는데, 그 때쯤에는 편지 대신 메일로 바뀌었다. 지금의 그녀는 또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고, 도내 라이브 하우스에서 활동하는 록큰롤 소녀다. 안지 10년 이상. 변함없이 메일은 온다.


가끔은 얼굴 보러 가줘야겠지.

                   

 ●                       ●


「아 치쨩이다. 치쨩!」

오디션 회장에 들어가자마자 하루나가 소리 높혀 들썩인다.

이전에 방송에서 같이 연기하던 아이를 발견한 모양이다.


「이, 이봐요 히로세 씨」

이번 오디션을 주관하는 회사의 담당자가 뛰어온다.


「안 되죠. 타고난 머리카락이 살짝 밤색이지만 모델 활동을 하고 있어서 지금은 흑발이라고 하셨잖아요.」

확실히 내가 마지막에 만났던 지난달까지는 흑발이었다고.


「좌우지간! 심사원이 걸고 넘어지면 합격하면 곧장 검은색으로 염색하겠다고 대답하세요!」

주변을 둘러본다. 틀림없이 불려온 아이는 다들 흑발이다.

그리고 심사원이 그런 질문을 할 것도 없이, 이번에는 떨어지겠구나 확신한다.

어느샌가 내 옆에 와있던 하루나도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자리를 뜬 담당자의 등을 보면서, 하루나는 킥킥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깔보지 말라구. 우리를.」

아니, 정확히 말하면 깔보고 있는 건 너 혼자거든…


「간만에 만났는데 역시 치쨩은 귀여워」

「뭐 그렇지」

「이 CM도 치쨩이 붙으면 좋을텐데」

아니, 네가 붙지 못하면 우리 사무소에는 1엔도 들어오지 않는단 말야.


「그럼, 내 차례 오기 전까지 치쨩이랑 얘기하고 올게」

무라카미 하루나는 어디서건 언제까지고 무라카미 하루나다.

내 생각에 무라카미 하루나란 생물은, 굉장히 맘 편하겠지.

하지만 옆에서, 뒷수습을 하는 건 살짝 큰 일이다.

아무튼, 오늘은 이미 늦었으니까 끝나면 하루나를 집까지 배웅해주자.

치쨩과 즐겁게 얘기하는 하루나를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                       ●


나는 나대로 꿈을 꾼다. 덤으로 고민은 끊이질 않는다.


「요즘,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는 밤이 많은데, 좋은 숙면 방법 없을까?」

주말 라멘 홍보대사와 라멘을 먹다가 문뜩 질문해 봤다.


「그럼 안 자면 되지.」

라멘에 탁상에 놓인 마늘을 뿌리며, 녀석은 극히 시원스럽게 답한다.


「그런거야?」

「잠이 안 오면 깨어 있음 그만이야. 반드시 머잖아 졸려오거든.」

「뭐 그렇지.」


그 말대로다. 인간 반드시 졸리게 된다. 하룻밤 정도 철야하면 다음날은 잠이 오겠지. 진리다.인생의 다양한 문제야, 어렵게 보여도 실은 모두가 간단할지도 모른다.


「그럼, 고민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하면 될까? 남한테 상담하거나 푸념하는 건 싫거든.」

「난 고민하면, 언제나 머리속에 사카모토 료마 선생이 나타나.」

철학자 같은 눈을 하고서 녀석은 그릇을 들고 국물을 마신다.


「사카모토 선생말야?」

「음.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지.『그쪽은 그딴 걸로 고민하는 겐가. 작아, 작아, 작다네.』라고 말이야. 요즘도 그런 말만 계속 듣고 있어.」

「뭣때문에 고민했는데?」

「라멘을 국물까지 다 마시고 싶은데, 요즘은 칼로리나 염분이 맘에 걸렸거든.」 말그대로 작다.


「너도 머리속의 누군가한테 물어보는 게 좋을거야.」

「고마워. 참고가 됐어.」

진짜 참고가 됐다. 뭐든 물어보고 볼 일이야.

그나저나 역시 라멘은 돈코츠 소유에 돼지고기 비계 가득한 게 최고야.

                   

 ●                       ●


드라이브 중이다.

벌써 시각은 심야에 1을 더한 정도의 시간.

하루나를 집까지 바래다준 다음, 정신 차리고 나니 자택과는 반대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딱히 이유는 없다.


카 스테레오에서는 죠 카커의 쉰 가성이 울려퍼진다. 이런 밤에는 실로 안성맞춤이다. 그가 노래하는『You Are So Beautiful』을 좋아한다. 여러 아티스트가 이 곡을 커버하고 있지만, 너나 할 것 없이 너무 고와서 마음을 울리지 못한다.『당신은 너무나도 아름다워』라 아름답게 부르면, 무슨 세련된 미남 미녀의 연애 드라마 같아서, 듣고 있으면 침을 뱉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가 부르는 이 곡은 전혀 다른 맛이 있다.『나에겐 네가 너무도 아름다워』알콜 중독의 한심한 아저씨가, 절대로 자신은 손이 닿지 않을 사람을 그리워하듯, 쉰 목소리로 쥐어짜듯 노래하는 이 곡이 좋다. 정말 좋다.


초록불에서 멈추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담배연기가 깜깜한 하늘에 하늘하늘 떠오른다.



선배, 저 사실은 힘들어요.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해본다.


나 나름대로 노력하고 노력해서 여기까지 와서, 겨우 여기까지 왔지만, 잃어버린 것도 많은 모양이예요. 앞이 보이질 않아 무섭습니다.


살짝 약한 소리를 해봤지만, 머리속에 선배는 나와주지 않았다. 목적지는 정하지 않았으니까, 도로의 안내표식을 보면서 적당하게 진행방향을 결정한다. 목적지는 바다 쪽. 내일은 녹음도 미팅도 급한 사무작업도 없는 걸 머리 한구석으로 확인. 어쩐지 이대로 어딘가로 실종되어도 괜찮겠단 생각이 든다.


일단 생각만 해둔다. 심햐의 도로는 달리 달리는 차도 얼마되지 않아서 기분이 좋다. 커브를 돈다.그대로 가드레일을 뚫고 공중 다이브를 해서 별이 되어도 괜찮겠단 생각이 든다. 이것도 생각만 해두자.


나 하나 사라져도 세상은 변하지 않고, 지구도 빙글빙글 계속 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나를 의지하는 아이들이 있는 동안은 실종도 다이브도 별이 되는 것도 보류하자. 그 쯤은 폼을 잡아야지.


●                       ●


밤이 밝을 무렵, 바다가 근사한 항구 도시에 도착했다. 마을의 명물인듯한 건어물이 걸려있었고, 건어물 같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곳에 앉아 있다.


정오가 지날 때까지 그 마을의 제방에서 멍하니 바다를 보고 있으려니 휴대전화가 울렸다.


하루나, 오디션 깔끔하게 낙선.

뭐, 그런 법이지.

하루나한테 낙선을 알리는 메일을 보내자, 곧바로 답장이 왔다.

『오늘, 머리를 검게 염색했어요.』

바다를 바라보며 소리 내어 나는 웃는다.

                  

  ●                       ●


머리속으로 누군가와 상담을 해보고자 생각했다.


내 머리속에는, 안타깝게도 선배도 사카모토 료마 선생도 나와주지 않았다. 대신 어째선지, 농구공을 손에 쥔 백발의 뚱뚱한 남자가 나타나 나한테 이렇게 한마디를 했다.

「포기하면, 바로 그때 시합은 끝나는 거야.」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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