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스테이트 오브 아메리카


불과 몇년전까지 사다코랑 카야코는 누가 더 셀까 몽상하던 내가(우리들이), 어느틈엔가 좀비에 둘러싸이고 말았다. 제로 년대 이후, 세계규모로 확대진행 중인 좀비 아웃브레이크. 예를 들어 이토 요시카즈의 말에 따르면 좀비 영화팬의 바이블 <좀비영화 대사전>에 수록된 1932년부터 2002년까지의 작품이 약 350편이었던 것에 비해서, 그 후 02년부터 10년까지 십년 남짓한 사이에 개봉된 작품은 300편을 웃돌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좀비가 전세계로 증식했다곤 하나, 톰 카슨 등의 미국의 수많은 비평가나 팬이 말했듯이 좀비가 미국이 세계에 자랑할 메이드 인 USA의 괴물이란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프랑켄슈타인도 흡혈귀도 늑대인간도 전부 유럽에서 탄생한 캐릭터. 아무리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흡혈귀와 늑대인간 간의 삼각관계로 전세계 소녀를 가슴 뛰게 만들고 <뱀파이어 헌터  링컨>으로 건국의 그늘에서 암약한 흡혈귀 이야기로 미국사를 새로 써본들, 어차피 빌려온 의장인 것이다.


반면 좀비는, 이 또한 익히 알려져 있듯이, 원래는 미국에서 서인도 제도로 연행당한 흑인노예들의 신앙인 부두교의 뱀모양 신Zombi가 기원인 존재인데, 지비키 유이치는 최초의 좀비 영화인 <화이트 좀비>가 제작된 1932년이, 수많은 흑인노동자가 아이티에서 미국 남부로 유입되어, 면화농장 등지에서 노동에 종사한 시기였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좀비는 실로 흑인문화의 끝모를 파워에 대한 미국인의 불안이 형상화된 것이며 '아이티가 19세기에 가장 먼저 독립을 달성한 흑인국가란 사실도, 그 형상화와 관계가 없지는 않다.' 즉 미국이 낳고, 미국인이 더없이 아끼는 좀비란, 그 기원부터가 이미 인종의 메타포가 강렬하가 각인된 존재였던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모던 좀비의 조상인 조지 A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흑인차별을 고발하는 작품이었던 것도 어떤 의미에선 필연이라 할 수 있다. 하루밤의 사투를 헤쳐나와 살아남은 흑인청년을 향해 집중포화를 퍼붓는 백인 무리. 본작이 D.W.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 안에서 남북전쟁 당시 농성 중인 백인과 주위를 포위한 흑인의 구도를 그대로 뒤짚은 비판적인 재해석이란 시노자키 마코토의 지적 또한, 좀비가 얼마나 미국적인 상상력 안에서 탄생했는지를 말해준다.


제로년대 이후의 좀비붐의 발생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가령 그게 02년의 영국 영화 <28일후>나 <바이오 해저드>나 <하우스 오브 더 데드> 같은 일본산 게임이 발단이고 미국발 현상이 아니라고 한들 (당시 미국은 J호러 붐이었다.), 좀비는 순식간에 제로년대의 미국 아이콘이 된다.


80년대, 90년대의 미국을 상징하는 괴물하면 뱀파이어였고, 생피를 빨아 죽음에 몰아넣는 흡혈귀는 에이즈 패닉을 나타내는 형상이었는데, 그것이 제로 년대 이후 좀비로 이동한 계기는 역시나 911에 있을 테지.


지비키는 로메로가 확립한 모던 좀비의 특성과 매력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디까지나 물체로서의 사체 그 자체로, 영 같은 관념은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그것은 생리적 반응으로 움직이고, 생자의 살을 먹을 뿐이지, 거기에 생전의 인격도, 사후의 영적인 원념도 존재하지 않는다. 있는 것은 <물체>로서의 움직이는 사체 뿐이다. 우리가 좀비에 강하게 매료되는 이유는, 개인의 내면적인 감정이 전혀 개입하지 않는, 이 <물체>로서의 존재감이 크지 않을까. 하지만 좀비는 무기적이긴 해도 기계는 아니라, 피와 내장으로 이루어진 육체 그 자체다. 우리들에게 가장 친숙한 이 육체가, 추하게 무너지면서 한결같이 습격해오는 공포, 그 압도적인 무의미함에 특이성이 있다.


911을 체험한 미국인에게 가장 가열한 이미지를 남긴 것은, 세계무역 센터를 꿰둟는 항공기도 무너지는 타워도 아니라, 무엇보다 타워에서 뛰어내린 사람들의 무리였다. (예를들어 당시, 낙하한 사람들을 목격했는가 여부는, 생존자의 PTSD 예측인자 중 하나였다) 그 이미지는 이윽고, 낙하하는 여성의 나체조각으로 물의를 일으킨 에릭 피슬의 <떨어지는 여인>을 비롯해, 미술이나 문학이나 영화의 갖가지 장르에 흡수되었다. 


특히 타워 북동(北棟)에서 뛰어내린 남자를 찍은 통칭 <폴링 맨>의 사진은 돈 드릴로의 <떨어지는 남자>나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등의 미국 문학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이 사진의 남성처럼 생과 사 사이에 매달린 인간, 물리적인 중량이 있는 고기덩이로서의 인간을 생생히 불러 일으킨 것이 911이었다.


좀비가 지닌 <물체>로서의 존재감, 압도적인 무의미함은, 그러한 사람들의 자기인식과 완전히 호응을 한 것이다. 거기서 집단이면 무섭지만 개체로는 둔중하고 무력한 존재로서의 좀비 이미지가, 인간을 습격하는 적이라기보단 오히려 서서히 우리들의 모습과 겹쳐져 간다.


실제로 <시체들의 밤> <시체들의 새벽> <시체들의 날> 3부작 이래 로메로가 20년 만에 발표한 05년작 <랜드 오브 데드>는 그야말로 포스트 911영화였는데 여기서는 세계무역 센터 빌딩을 방불케 하는 타워를 고유하는 부유층, 게토에 사는 빈민층, 그 바깥에 좀비란 도식 속에서, 좀비는 오히려 학살당하고, 손도 발도 못쓰고 죽임 당하는 가련한 사람들이며, 마지막에 리더격인 흑인 좀비 <빅 대디>가 통솔하는 좀비 무리가 살 거처를 찾아 어디론가 떠나는 등에서는 이상할만치 애수가 어려 동정을 불러 일으킨다.


11년의 월가 시위 또한 <물체>로서의 육체에 의한 항의였듯이, <좀비 헤즈>나 <좀비 처형인>, 소설로는 <나의 좀비라이프> 같은 일인칭 좀비 시점이나 좀비 시점의 작품이 증가한 것은 사회현상과 싱크로 하고 있다.


사람들이 둔중한 몸을 가누는 정통파 좀비에 스스로를 겹쳐보기 시작한 한편, 제로 년대의 좀비붐 공로자는 역시나 전자와 대극이라 할만한 <달리는 좀비>이다. 이는 폭주하고 가속화 하는 자본주의의 상징이라거나, 좀비가 점점 인간에 가까워지는 이상은, 좀비란들 달리기 마련이란 의미 부여도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달리는 좀비>를 새로운 표현수단으로 삼아 양산되는 좀비영화가 현실의 갖가지 사상(事象)을 리메이크/패러디/매시업 해나가는 과정에서 <911> 또한 미국 바깥에서 응답하여 좀비영화 안에 흡수된 사실은 간과할 수 없다.


캠코더 일인칭 시점 (POV)에 의한 긴박감이 흘러 넘치는 스피디한 영상으로 흥행을 거둔 스페인 발 모큐멘터리 영화 <REC>은 어쩌다 동시다발 테러 당일에 소방대원을 밀착취재한 노데 형제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9·11 N·Y 동시다발 테러 충격의 진실>의 영향을 받았다.


세계무역 센터 빌딩 내부에 갇힌 희생자들의 모습은 낡은 5층 아파트 내부에 갇혀,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도망치는 등장인물로 탈바꿈 하여, 스페인의 좀비 영화 속에 그려진 것이다.


<워킹 데드>란 이름의 신화


그리고 좀비는 마침내 미국 TV시리즈로 진출했다. 10년 10월에 방송을 시작한 <워킹 데드>는 로버트 커크만의 동명 인기만화 시리즈를 프랭크 다라본트가 제작 총지휘(다라본트 본인이 원작을 서점에서 발견해 영상화를 추진했다고 하는데, 제 1시즌 이후에는 강판됐다.), 로메로 영화로 낯익은 그레고리 니코테로가 특수분장을 맡은 호화포진으로 스타트. 유료 케이블 채널 AMC에서 제 1시즌 전 6화가 공개되자, 미국 케이블 TV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획득. 이후에도 스스로 시청률 기록을 거듭해서 갱신해가며, 12년 10월 14일 방송된 3시즌 1화는 미국에서 1천만명이 시청. TV판의 스토리를 베이스로 게임으로도 만들어져 현재까지 탄탄한 인기를 자랑한다.


<달리지 않는 좀비>나 <기껏 건진 목숨을 인간끼리 싸우며 헛되게 날린다> 같은 로메로 영화의 전통을 계승해, 좀비에 포위된 묵시록적인 세계 속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인간답게 살아가는지에 초점을 맞추고서, 어떤 의미로는 매순간이 생사를 넘나드는 <ER> 같은 의료 드라마와도 통하는 휴먼 드라마이다.


12년 2월 현재 방영된 TV판 3시즌 8화까지와, 코믹스 일본어 번역판 전 3권 8장까지의 내용을 기초로 양자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는 멀과 대릴 형재의 존재를 비롯해 많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스토리의 중점과 룰설정의 차이라고 생각된다.


만화판의 스토리 중점은 좀비를 프레임으로 삼아 생사, 인간의 존재, 윤리, 법 같은 다양한 경계를 되묻는 점에 있다. 애틀란타 교외에 있는 시골마을에서 보안관 대리를 하고 있던 릭 그라임스가 그룹 내의 리더적 입장이 되어 십수명의 생존자를 이끄는 에픽 사가적인 요소가 만화판에서는 눈에 띈다. 보안관 대리란 릭의 직업 설정이나, 근무중에 총격을 당해 혼수상태에 빠진 릭이 병원에서 눈을 뜸=생사의 경계를 방황하는 모험이 암시되었 듯, 그는 법이나 생사의 경계의 파수꾼 입장을 떠안고 있으며, 도중에 일행이 다다른 형무소 또한, 법을 탈피한 인간을 격리하는 장소가 좀비의 습격을 막는 이상적인 쉘터가 된다는 경계의 반전을 나타내어 효과적인 무대로 기능한다.


만화판은 이같은 요소에 생존을 위한 살인의 옳고 그름이나, 카니발리즘 같은 일선을 넘은 대처 등의 현재 TV판에서는 묘사되지 않은 모럴 해저드 문제를 과격하게 도마 위에 올려놓는다. 인간의 적대자에게 습격을 받은 릭이 상대의 얼굴을 물어뜯은 다음, 한페이지를 통째로 사용해 얼굴을 업시켜 말하는 <워킹 데드는 바로 우리들이다! (We ARE the Walking Dead!)>대사가 웅변하듯, 스토리가 진행함에 따라 생존자와 좀비를 나누는 경계가 차츰 희미해지고, 그것이 독자에게 그런 경계를 강하게 재고하게 만든다.


한편 TV판의 독자적인 요소 중에서 이채로운 색을 띄는 게, 1시즌 최종화의 종착지 CDC(질병대책 센터)와 그와 관련된 약속, <좀비에게 물리지 않아도 인간은 죽으면 어김없이 좀비로 되살아난다>는 좀비물의 법칙 속에서도 상당히 참신한 룰이다. 즉, 만화판이 생자와 좀비를 언젠가 무효화 시키는 대립항으로 그렸다고 한다면, TV판은 그 양자를 연속성을 가진 것으로 포착한 부분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살아있는 사람 전원이 <잠재적인 좀비 예비군>이란 이 설정은, 기독교가 설파하는 사자의 부활에 대한 악취미적인 패러디이며, 좀비 애호가가 흔히 입에 담는 <예수 그리스도=좀비> 설의 희화화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같은 사실을 입증하듯이, 2시즌 1화에는 일행이 남부 침례교 교회에 들르는 장면이 삽입되어 있다. 예배석에는 좀비들이 숙연히 앉아있고, 예단 중앙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등신대에 가까운 예수상이 있는데, 그 예수의 피부는 부자연스러울 만치 시퍼렇고, 전경의 좀비들 사이에 완전히 섞여 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중략)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요한복음)


이리하여 마지막 날에 되살아난 사자들 무리는 산자를 습격하고, 릭은 모세처럼 민초를 이끌고 황야를 방황한다. 만화판에선 희박한 종교적 요소가 TV판에 가미된 점에는, TV판이 의도하는 것이, 21세기의 미국에 새로운 신화를 만들고자 하는 의도는 아닐까 짐작된다.


그걸 뒷받침 하는 한가지 점이 본작에 진하게 배어있는 서부극 요소이다. 보안관 모자를 쓴 보안관 제복 차림의 릭이 가솔린이 바닥난 차를 머리고 말을 타고서, 황량한 무인의 고속도로를 홀로 애틀란타 시가를 향해 나아가는 서두의 장면은 그것을 단적으로 선언한다. 로메로도 최신작 <서바이벌 오브 더 데드>를 <빅 컨츄리>와 의도적으로 비슷하게 제작한 사실을 밝히고 있는데, 제로 년대 미국의 좀비영화에서 엿보이는 서부극에의 회귀 또한, 미국사와 대중문화의 원점에 회귀하여, 쌍방의 역사를 새로 전하고자 하는 욕망의 표출인 것이다.


좀비영화의 가장 큰 난관은 총을 다루지 못하는 것이 죽음을 의미하고, 총쯤은 다뤄야 위급할 때 살아남을 수 있다고 통감시키는데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다시금 총을 마구 쏴갈기는 좀비 영화는 전미 총기 협회의 수하가 아니라, 서부극의 전통을 이어받아 미국의 국가 신화를 현대적으로 자아내고자 하는 장르인 것이다.


카무플라주 오브 더 데드


<워킹 데드>에 등장하는 흑인 여전사 미숀이 일본도를 사용하는데에는 총기 사회 미국의 불안이 반영되어 있다. 그런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엘리자베스 메칼리스터의 말에 따르면 좀비 영화에는 이 미숀 같은 흑인 영웅이 등장한다는 법칙이 있다고 한다. 전술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벤 <시체들의 새벽>에서는 피터 <시체들의 날>에서는 존 <랜드 오브 더 데드>의 빅 대디 역시 좀비 측의 구세주라고 할만하고, <좀비 헤즈>의 토마스나 만화판 <워킹데드>의 타이리즈 등 로메로 좀비를 계승한 작품에도 마찬가지로 흑인을 찾아 볼 수 있다.


이같은 특성은 전술한대로 좀비의 형상에 내재한 인종의 메타포와도 관련이 있을 테지. 리처드 다이어는 이 이유를 정치적인 올바름이 아니라, 여기서 등장하는 좀비들이 백인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는데, 가령 좀비 영화에 있어서 흑인 영웅의 존재가 좀비가 되고자 하는 백인들의 욕망을 나타내고 있다면, 거기에는 대체 어떤 의미가 감춰져 있는 것일까.


이를 좀비 영화의 생존법 중 하나인 <카무플라주>, 즉 좀비인 척 한다는 전략으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좀비인척>은 좀비 코미디 영화의 걸작 <새벽의 황당한 저주> 속에서 좀비 무리를 돌파하기 위해 채택한 방안으로 유명한데 <워킹 데드>에서는 그것이 유효한 전술로 거듭 쓰이고 있다. 좀비한테 포위당한 릭과 글렌이 좀비를 도려내 체액이나 장기를 온뭄에 두르고 탈출하는 장면은 TV판에선 상당히 긴 시간을 할애해 그려졌고, 그 그로테스크함으로 인해 강렬한 인상을 안겨주는 시퀀스가 되었다.


미숀이 두명의 좀비를 거느리고 여행을 한 것도 카무플라주를 위한 것이었고, 만화판에서는 이상향적인 게이티드 커뮤니티, 울즈베리에 도착한 일행이 할로윈을 축하하는 사람들을 보고서 현실감을 상실하는 대목에서 가장이란 행위를 넌지시 언급하고 있다.


인간들이 좀비인 척 하는 이 의장(疑裝) 전략은 19세기 미국에서 건국이래 처음 보급된 국민적 오락 민스트럴 쇼를 연상시킨다. 백인들이 그을린 코르크로 얼굴을 검게 물들이고, 흑인을 익살스럽게 모사한 이 퍼포먼스는 오와타 노시유키의 정리에 따르면, 흑인차별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출신도 문화도 다른 이민족으로 구성된 노동자 계급인 백인들에게 균질적인 허구의 백인성을 부여해, 통일적인 아이덴티티를 부여하기 위한 장치였다. 그렇다면, 개체가 아닌 매스, 카테고리이며, 애시당초 인종, 그것도 흑인의 은유가 내재하는 좀비를 의장한다는 행위가, 이 민스트럴 쇼의 리메이크란 견해는 충분히 설득력 있다.


좀비 또한 잿빛깔로 문들어진 메이크업으로 신체적 차이로 환원되어야 했을 인종의 개념을 괄호에 넣어 <살아있는 시체>란 상상의 공동체적 동일성을 부여한다. 단 민스트럴 쇼와 마찬가지로, 여기서의 좀비 의장이 허구의 백인성을 빚어내는 장치라고 여기는 건 너무 단락적인 생각이다. 


로메로는 "나는 언제나 <내부의 괴물>의 아이디어가 취향이었어. 좀비는 바로 우리들이란 생각이 드는데. 좀비는 블루 컬러의 괴물인거야"라고 말하고 있는데, 좀비를 카무플라주 한다는 것은, 인종이나 계급을 둘러싼 매트릭스를 빠져나와 <육체노동자 계급의 살아있는 시체>란 이중 삼중으로 픽셔널한 통일적 주체를 가짜로 꾸며내는 일이며, 모든 인종의 기호를 아나키즘에 빠트리는 시도는 아닐까.


좀비의 의장에 사용되는 시퍼런 메이크업이나 빨간 장기는 흑인이나 백인 같은 특정 인종으로는 회수될 수 없는 공동체란 사실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좀비의 의장을 생각해보면, 미국 문화 속에서 좀비를 일약 유명하게 만든 게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였단 점도 우연의 산물로는 생각하기 힘든 구석이 있는데, 심지어 일반인들이 좀비 문장으로 거리를 걷는 <좀비 워크>가 미국에서 시작해 전세계로 확산되는 사태는 감회가 깊은 일이 아닐까 한다.


좀비 워크는 그야말로, 좀비의 의장으로 맺어진 공동체에 의한, 봉오도리나 다름없는 축제이며 정치적인 데모이기도 하다. 그것은 좀비 영화 속과 마찬가지로, 어처구니 없으면서도 절실한, 지금의 세계를 살아서 헤쳐나가기 위한 생존전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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